경기도 화성시

    봉림사(화성)

    서해를 바라보며 서있는 봉림사는 신라 진덕여왕(647~653)때 고구려, 백제와의 잦은 침략을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물리치고자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절 이름은 창건 당시 궁궐에서 기르던 새가 절 근처의 숲 속에 날아들었다는 데서 유래하고, 산 이름도 비봉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극락전 내에는 보물 제980호로 지정된 목조 아미타불이 안치되어 있다. 1978년 이 불상을 개금 할 때 발견된 복장 내에 조성개금기에 의하면 조성시기는 1312년 이전임을 알 수
    내 여행바구니 →
      • 공유링크 복사

    기본 정보

    • 전화번호
    • 031-356-9117
    • 정기휴일
    • 연중무휴
    0

    한눈에 보기

    서해를 바라보며 서있는 봉림사는 신라 진덕여왕(647~653)때 고구려, 백제와의 잦은 침략을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물리치고자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절 이름은 창건 당시 궁궐에서 기르던 새가 절 근처의 숲 속에 날아들었다는 데서 유래하고, 산 이름도 비봉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극락전 내에는 보물 제980호로 지정된 목조 아미타불이 안치되어 있다. 1978년 이 불상을 개금 할 때 발견된 복장 내에 조성개금기에 의하면 조성시기는 1312년 이전임을 알 수

    내 여행바구니 확인 · 일정 만들기 →
    입 장 료:무료
    쉬는날 : 연중무휴
    이용시간 : 07:00~17:00
    주차시설 : 가능
    우편번호 : 18255
    전화번호 : 031-356-9117
    0.0 5점 만점 · 0명 참여

    방문자 별점

    이 장소를 경험하셨다면 별점을 남겨주세요. 첫 평가가 최초 평균별점이 됩니다.

    0.0 5점 만점 · 0명 참여

    별점 비율

    참여자 평가 분포입니다.

    4.5~5.0
    0%
    3.5~4.0
    0%
    2.5~3.0
    0%
    1.5~2.0
    0%
    0.5~1.0
    0%
    위치 안내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주석로80번길 139
    길찾기
    서해를 바라보며 서있는 봉림사는 신라 진덕여왕(647~653)때 고구려, 백제와의 잦은 침략을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물리치고자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절 이름은 창건 당시 궁궐에서 기르던 새가 절 근처의 숲 속에 날아들었다는 데서 유래하고, 산 이름도 비봉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극락전 내에는 보물 제980호로 지정된 목조 아미타불이 안치되어 있다. 1978년 이 불상을 개금 할 때 발견된 복장 내에 조성개금기에 의하면 조성시기는 1312년 이전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복장에서 고려 후기에서 조선 초기 사이의 각종 전적 8종이 발견되어 보물 제1095호 지정되었다. 현재 본사인 용주사 박물관에 이전 보관하고 있는데, 이중에 담뱃갑보다 작은 크기의 금강경(가로 7.3㎝, 세로 4.5㎝) 1339년에 간행된 목판본으로 섬세한 필치의 변상도까지 갖춘 호신용 경전이다. 사리, 사리병, 각종섬유, 곡물, 구슬 등이 복장에서 함께 발견되었고, 그중 사리는 1979년 3층 사리탑을 조성하여 봉인하였다.

    주변 관광지

    남양체육공원 여행 추천 - 로드트립
    남양체육공원
    높은 아파트와 빌딩들이 둘러싸고 있는, 도심 속에서 여유롭게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면서 건강을 챙길 수 있는 화성 남양체육공원은, 게이트볼장, 축구장, 풋살장, 운동기구 등 다양한 체육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남양천과 인접해 있고 생태습지원, 연지원이 함께 있어 자연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체육공원이다. 체육공원 입구에 넓은 주차장이 있고, 주차장 바로 옆에는 깔끔한 화장실을 갖추고 있는 관리사무소가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잔디
    약 1.7 km
    남양성모성지 여행 추천 - 로드트립
    남양성모성지
    남양 성모 순례지는 병인년(1866년) 대박해 때 많은 순교자들이 피 흘리며 죽어간 무명 순교지이다. 이곳에서는 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는데 치명일기[致命日記]와 증언록에 기록이 전해지는 남양의 순교자는 충청도 내포 사람 김 필립보와 박 마리아 부부, 용인 덧옥돌 사람 정 필립보, 수원 걸매리 사람 김홍서 토마 네 사람뿐이다. 남양 순교지는 다른 순교지와는 달리 무명 순교자들의 치명터였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오다가, 1983년부터
    약 2.5 km
    홍난파 생가 여행 추천 - 로드트립
    홍난파 생가
    홍난파는 1898년 4월 10일 홍순의 장남으로 태어나 1915년 조선정악전습소양악부를 마친 뒤 동 전습소의 교사가 되었다. 1918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우에노 음악학교에서 2년간 수학한 뒤 귀국하였으며, 1920년 ‘봉선화’를 작곡하였다. 1922년 연악회(硏樂會)를 창설하였고 1925년 바이올린 독주회를 가졌다. 한편 한국 최초의 음악잡지 음악계를 발간하였을 뿐 아니라 소설도 발표하여 문학적 재질도 보였다. 현재의 생가 건물은 당초 멸실되었던 것
    약 3.2 km
    남양향교 여행 추천 - 로드트립
    남양향교
    남양 향교는 조선시대 유교와 성현의 가르침을 교육하던 교육기관으로, 고려말 조선초 약 625년의 역사를 품은 남양향교는 유림들이 학문을 수양하면서 위인들을 배향하던 곳이다. 1397년에 남양부 음덕리 면역곡동에 처음으로 지어졌으며, 1873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남양향교는 앞쪽에 교육 공간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를 배치하고, 뒤쪽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을 두고 있다. 그 외 출입구인 내삼문과 외삼문 그리고 제사를 준비하는 수
    약 4.0 km
    • 관리자
    • 오래 전
      조회수 199
      댓글 0
    • 이전글원갑사2025.12.04
    • 다음글달맞이광장2025.12.04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