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선생생가지

    대전광역시중구
      단재 신채호선생 생가지는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이 태어나 8세까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신채호 선생은 이곳 도리미 마을에서 신광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충북 청주로 이사를 하였다. 19세 때 성균관에 입학하여 26세에 성균관 박사가 되었고, 1905년 을사늑약 후 일제의 식민통치에 맞서 언론을 통한 민중계몽운동과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언론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항일비밀단체인 신민회 사건에 연루되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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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장실:있음
    주차시설 : 있음
    유모차 대여 여부 : 없음
    우편번호 : 35086
    전화번호 : 042-606-6286
    대전광역시 중구 단재로229번길 47(어남동)
    단재 신채호선생 생가지는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이 태어나 8세까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다. 신채호 선생은 이곳 도리미 마을에서 신광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충북 청주로 이사를 하였다. 19세 때 성균관에 입학하여 26세에 성균관 박사가 되었고, 1905년 을사늑약 후 일제의 식민통치에 맞서 언론을 통한 민중계몽운동과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언론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항일비밀단체인 신민회 사건에 연루되어 1910년에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 독립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1928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뤼순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57세 되던 해인 1936년 2월 21일 옥사하였다. 1992년 여름, 선생의 생가를 발굴 조사하고 주민들의 고증을 토대로 선생의 생가를 초가집으로 복원하였으며 신채호의 동상도 설치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에 1991년 7월 10일 대전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화장실:있음 주소 : 대전광역시 중구 단재로229번길 47(어남동) 전화번호 : 042-606-6286 우편번호 : 35086 주차시설 : 있음 유모차 대여 여부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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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재신채호선생생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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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수천하마을
    대전 중구에 위치한 무수천하마을은 2006년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된 대도시 근교에서는 드물게 역사와 전통문화 그리고 농촌다움을 함께 보전하고 있는 마을이다. 무수(無愁)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대대로 근심걱정 없이 살아온 마을로서 부모사랑의 마음을 간직한 안동 권 씨 유회당 종가, 여경암, 거업제 등 역사적 문화유산이 잘 보존되어 있다. 부추와 콩 등 농산물을 재배하고 있어 계절별 농사체험이 가능하며, 다양한 전통음식을 즐길 수 있다. 또한 공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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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권씨유회당종가일원
    안동권씨 유회당 종가 일원은 조선 영조 때 호조판서를 지낸 유회당 권이진(1668~1734) 선생이 처음 터를 잡았던 집으로, 화재로 소실된 것을 1788년 후손들이 현재의 자리에 옮겨 지은 것이다. 이 가옥은 보문산 남쪽을 배경으로 하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는 산과 내를 벗하여 생활함으로써 청결하고 참된 선비의 경지를 이루겠다는 생활철학이 담긴 것이다. 전반적으로 건물의 규모를 작게 하고, 건물 간의 공간을 여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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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회당사당은 보문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조선시대 문화재이다. 조선 영조 때 호조판서를 지낸 유회당 권이진(1668∼1734) 선생이 건물 뒤 산에 있는 부모의 묘에 제사를 지내면서 독서와 교육을 하기 위해 1714년(숙종 40)에 지었다. 유회는 ‘부모를 간절히 생각하는 효성스러운 마음을 늘 품고자’하는 뜻을 담고 있으며, 중국 명나라 때 학자인 전목제의 ‘명발불매 유회이인’이라는 시에서 따온 말이다. 유회당은 앞면 4칸, 옆면 2칸 건물로 활수담이라는
    약 5.1 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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