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이병기선생 생가

    이 집은 국문학자이며 시조 작가인 가람 이병기 선생이 태어나 살던 곳이다. 조선 말기 선비의 가옥 배치를 따르고 있는데 안채, 사랑채, 헛간, 고방채, 정자 등이 남아 있다. 소박한 안채와 사랑채, 아담한 정자와 연못에서 선비 가옥의 면모를 잘 살필 수 있다. 슬기를 감추고 겉으로 어리석은 체한다는 뜻을 간직한 ‘수우재(守愚齋)’라는 사랑채 이름에서,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며 평생을 지조 있는 선비로 살아온 그의 풍취가 은은하게 느껴진다. 가람 선생은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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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정보

    • 전화번호
    • 063-859-5792
    • 정기휴일
    • 매주 월요일 /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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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집은 국문학자이며 시조 작가인 가람 이병기 선생이 태어나 살던 곳이다. 조선 말기 선비의 가옥 배치를 따르고 있는데 안채, 사랑채, 헛간, 고방채, 정자 등이 남아 있다. 소박한 안채와 사랑채, 아담한 정자와 연못에서 선비 가옥의 면모를 잘 살필 수 있다. 슬기를 감추고 겉으로 어리석은 체한다는 뜻을 간직한 ‘수우재(守愚齋)’라는 사랑채 이름에서,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며 평생을 지조 있는 선비로 살아온 그의 풍취가 은은하게 느껴진다. 가람 선생은 우

    입 장 료:무료
    쉬는날 : 매주 월요일 / 추석
    이용시간 : 09:00~18:00
    주차시설 : 가능
    우편번호 : 54520
    전화번호 : 063-859-5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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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 안내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가람1길 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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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집은 국문학자이며 시조 작가인 가람 이병기 선생이 태어나 살던 곳이다. 조선 말기 선비의 가옥 배치를 따르고 있는데 안채, 사랑채, 헛간, 고방채, 정자 등이 남아 있다. 소박한 안채와 사랑채, 아담한 정자와 연못에서 선비 가옥의 면모를 잘 살필 수 있다. 슬기를 감추고 겉으로 어리석은 체한다는 뜻을 간직한 ‘수우재(守愚齋)’라는 사랑채 이름에서,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며 평생을 지조 있는 선비로 살아온 그의 풍취가 은은하게 느껴진다. 가람 선생은 우리 한글의 소중함을 깊이 인식하여 일찍이 1930년대부터 조선어문연구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으며, 1930년에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위원과 ‘선어 표준어’ 사정위원이 되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함경남도 흥원경찰서로 끌려가 1년간 옥고를 치른 뒤 고향에 내려와 칩거하였다. 한편 해방 후에는 전북대학교, 서울대학교, 중앙대학교 등에서 국문학을 가르쳤다. 주요 저서로 ‘국문학전사’, ‘역대시조선’, ‘가람문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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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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