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중구

    중명전

    중명전은 대한제국의 중요한 현장이다. 1904년 경운궁(현 덕수궁) 대화재 이후 중명전으로 거처를 옮긴 고종황제의 편전으로 사용되었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이곳에서 불법적으로 체결되었으며 그 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1907년 4월 20일 헤이그 특사로 이준 등을 파견한 곳도 바로 중명전이다. 한편 중명전은 1925년 화재로 외벽만 남기고 소실된 뒤 재건하여 외국인을 위한 사교클럽으로 주로 쓰이다가 자유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
      • 공유링크 복사

    기본 정보

    • 전화번호
    • 02-751-0742
    • 정기휴일
    • 매주 월요일
    0

    한눈에 보기

    중명전은 대한제국의 중요한 현장이다. 1904년 경운궁(현 덕수궁) 대화재 이후 중명전으로 거처를 옮긴 고종황제의 편전으로 사용되었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이곳에서 불법적으로 체결되었으며 그 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1907년 4월 20일 헤이그 특사로 이준 등을 파견한 곳도 바로 중명전이다. 한편 중명전은 1925년 화재로 외벽만 남기고 소실된 뒤 재건하여 외국인을 위한 사교클럽으로 주로 쓰이다가 자유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

    이용가능시설:매표소, 매점, 화장실/장애인 화장실, 돌담길 기념품샵(02-3789-3197)

    휠체어 대여(02-751-0713), 분실물 센터, 수유실

    관 람 료:무료
    화장실:있음(남녀 구분)
    한국어 안내서비스:[해설안내]

    - 참여인원 : 회당20인 이내(선착순)

    - 소요시간 : 35분


    [시간표]

    - 평일 14:00, 15:30

    - 주말 11:30, 14:00, 15:00

    - 공휴일 14:00
    0.0 5점 만점 · 0명 참여

    방문자 별점

    이 장소를 경험하셨다면 별점을 남겨주세요. 첫 평가가 최초 평균별점이 됩니다.

    0.0 5점 만점 · 0명 참여

    별점 비율

    참여자 평가 분포입니다.

    4.5~5.0
    0%
    3.5~4.0
    0%
    2.5~3.0
    0%
    1.5~2.0
    0%
    0.5~1.0
    0%
    위치 안내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 41-11 (정동)
    길찾기
    중명전은 대한제국의 중요한 현장이다. 1904년 경운궁(현 덕수궁) 대화재 이후 중명전으로 거처를 옮긴 고종황제의 편전으로 사용되었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이곳에서 불법적으로 체결되었으며 그 후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 1907년 4월 20일 헤이그 특사로 이준 등을 파견한 곳도 바로 중명전이다. 한편 중명전은 1925년 화재로 외벽만 남기고 소실된 뒤 재건하여 외국인을 위한 사교클럽으로 주로 쓰이다가 자유당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유재산으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1963년 박정희 대통령은 영구 귀국한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에게 중명전을 돌려주었다. 1977년 중명전은 다시 민간에 매각되었고 2003년 정동극장에서 매입한 뒤 2006년 문화유산청에 관리 전환하여 2007년 2월 7일 사적으로 덕수궁에 편입되었다. 2009년 12월 복원을 거쳐 2010년 8월부터 전시관 ‘대한제국의 운명이 갈린 곳, 덕수궁 중명전’으로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 뒤쪽으로 가면 정동극장이 있고 그 골목으로 들어가면 중명전이 있다. 중명전은 원래 정동지역 서양 선교사들의 거주지에 속해 있다가 1897년 경운궁(현 덕수궁)이 확장되면서 궁궐로 편입되었다. 이때 당호를 수옥헌이라 짓고 주로 황실 도서관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1901년 화재로 전소된 후 재건되어 지금과 같은 2층 벽돌 건물의 외형을 갖추게 되었다. 건물의 설계는 독립문, 정관헌 등을 설계한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이 하였다.

    주변 관광지

    서울 정동교회 여행 추천 - 로드트립
    서울 정동교회
    정동교회는 개신교가 이 땅에 보급된 후 가장 먼저 세워진 교회이다. 1885년 미국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 우리나라에 입국하여 배재학당을 세워 한국의 근대교육을 시작하였다. 그는 학교에서 종교 활동을 하였으나 예배만을 위한 건물을 구입하여 베델(Bethel) 예배당이라 하고 1887년 첫 예배를 시작하였다. 교인들이 늘어나면서 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교회 건립이 필요하게 되자 1895년 공사를 시작하여 1897년 12월 26일 봉헌식을 가졌다.
    약 0.2 km
    서울 구 러시아공사관 여행 추천 - 로드트립
    서울 구 러시아공사관
    러시아공사관은 조선말 한로수호조약이 비준된 1885년 직후에 착공되어 1890년에 준공되었다. 르네상스식의 우아한 2층 벽돌집으로 러시아인 사바틴(Sabatine)이 설계하였다고 한다. 공사관이 건립된 일대는 연산군이 도성 밖으로 놀러 가기 편리하도록 설치한 3개의 마장 중 하나였다. 고종이 일본을 견제하기 위하여 미국과 영국의 영사관과 함께 러시아 공사관을 덕수궁이 인접한 곳에 두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러시아 공사관은 아관(俄館)이라 불리는데, 우
    약 0.2 km
    정동교회 이필주 사택 터 여행 추천 - 로드트립
    정동교회 이필주 사택 터
    정동교회 이필주 사택 터는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위치한 역사적인 장소로, 3·1 운동에 앞서 제2, 3차 학생단 간부회와 기독교계 대표들이 회합을 가졌던 곳이다. 목사의 사택에서는 학생 대표들이 모여 독립운동 참여 방안을 논의하였고, 학생 대표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배부하기 위한 모임이 열렸다. 1918년부터 정동교회를 담임하던 이필주 목사는 3·1 운동 추진계획을 듣고 그 취지에 동의하여 민족 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고, 이로 인
    약 0.2 km
    덕수궁 돌담길 여행 추천 - 로드트립
    덕수궁 돌담길
    기존의 도로를 보행자 중심의 도로로 재정비하고, 보행자를 위해 보도와 차도 공존도로 및 푸르름이 가득한 가로공간인 녹도의 개념을 복합적으로 도입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례로 길이는 900m이다. 자연친화적인 점토블록 및 보행자의 안전한 보행권 확보를 위해 차도에 석고석 포장(페이빙스톤) 실시하였고, 시민들의 휴식 공간을 위해 느티나무 외 2종 130주 식재, 평의자 20개 설치하였으며 주변의 역사적 시설인 덕수궁과 연계한 역사적 가로 경관의 창출 및 가로환
    약 0.2 km
    • 관리자
    • 오래 전
      조회수 280
      댓글 0
    • 이전글마한문화공원2025.12.04
    • 다음글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2025.12.04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