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홍성군

    홍성 홍주읍성

    충남 홍성군에 있는 성으로, 길이 약 1,772m의 성벽 중 약 800m의 돌로 쌓은 성벽의 일부분이 남아있다. 처음 지어진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홍주성의 둘레와 여름과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하나 있다는 기록만 있을 뿐이다. 왜구의 침입이 예상되는 고을의 읍성을 새로운 격식에 맞추어 쌓게 되었던 조선 세종 때에 처음 쌓기 시작하여 문종 1년(1451)에 새로 고쳐 쌓았다. 당시 성의 규모는 둘레가 4,856척(약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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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정보

    • 전화번호
    • 홍성군청 문화관광과 문화재팀 041-630-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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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홍성군에 있는 성으로, 길이 약 1,772m의 성벽 중 약 800m의 돌로 쌓은 성벽의 일부분이 남아있다. 처음 지어진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홍주성의 둘레와 여름과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하나 있다는 기록만 있을 뿐이다. 왜구의 침입이 예상되는 고을의 읍성을 새로운 격식에 맞추어 쌓게 되었던 조선 세종 때에 처음 쌓기 시작하여 문종 1년(1451)에 새로 고쳐 쌓았다. 당시 성의 규모는 둘레가 4,856척(약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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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는날 : 연중무휴
    이용시간 : 상시 개방
    유모차 대여 여부 : 없음
    우편번호 : 32228
    전화번호 : 홍성군청 문화관광과 문화재팀 041-630-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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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 안내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아문길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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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홍성군에 있는 성으로, 길이 약 1,772m의 성벽 중 약 800m의 돌로 쌓은 성벽의 일부분이 남아있다. 처음 지어진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홍주성의 둘레와 여름과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하나 있다는 기록만 있을 뿐이다. 왜구의 침입이 예상되는 고을의 읍성을 새로운 격식에 맞추어 쌓게 되었던 조선 세종 때에 처음 쌓기 시작하여 문종 1년(1451)에 새로 고쳐 쌓았다. 당시 성의 규모는 둘레가 4,856척(약 1.5㎞), 높이는 11척(약 3.3m)이며 문은 4개가 있었고, 여장·적대 등의 여러 시설이 설치되었으며 안에는 우물 2개가 있었다고 한다. 동문인 조양문은 현재까지 남아있고 1975년 복원한 것이다. 아문은 조양문의 문루를 설치할 때 함께 세운 것이며 ‘홍주아문’이란 글씨는 흥선대원군이 직접 썼으나 현재 남아있지 않다. 우리나라 아문 중에서 가장 크고 특이한 형태를 지니며 조선시대 관아의 구조와 형태를 살필 수 있는 자료가 된다.안회당은 홍주목의 동헌으로 22칸의 목조 기와이다. 역대의 홍주목사와 홍주 군수가 행정을 집행하던 관아건물로 현재 군청 후정에 위치하고 있다. 여하정은 목조 와즙의 육각으로 된 수상정으로 현재 군청 후정에 안회당 뒤뜰과 연접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반대하여 의병을 일으킨 민종식 등이 이 성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을 공격하여 덕산으로 격퇴시킨 일이 있다. 이곳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읍성으로 이어졌으며, 조선 초기 새로운 형식에 의해 쌓은 성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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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주아문은 조선시대 홍주의 지방관이 근무하던 건물인 안회당의 바깥문으로, 조양문의 문루를 설치할 때 함께 세운 것이다. 안회당과 함께 홍성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목조건물이다. 홍주아문은 우리나라 아문 중에서도 가장 크고 특이한 형태를 지니고 있어, 조선 시대 관청 출입문의 구조와 형태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홍주아문 안에는 내삼문과 남과 북으로 행랑을 이어서 지어 담장을 대신했던 큰 건물이 있었는데, 3·1 운동 당시 홍성의 만세 사건을 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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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0.8 km
    • 관리자
    • 오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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