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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가시리마을
경기도 화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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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리마을은 30년간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어 마을 주변에 공장 축사 등의 오염원이 없는 무공해, 청정한 환경을 자랑한다. 가시리마을의 가시리는 액운과 귀신을 막아준다는 가시나무인 엄나무의 가시와 마을의 형태가 숟가락 같다고 하여 나온 시리(匙理)의 합성어다. 마을 입구에는 옛 조상들이 심어놓은 300년이 넘은 엄나무가 마을을 지키고 있고, 잘 보전된 자연환경을 이용한 전통 농사 체험에서 옛 향수를 느낄 수 있으며 간척 사업으로 인한 넓은 농토에서 수확되는 쌀 및 태양초 고추 등 유기농 농산물이 있다. 인근 주변 관광지 및 레저 시설 등이 마을 주변에 인접하여 위치하여 다양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마을이다.
가나아트파크
경기도 양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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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아트파크는 1984년 국내 최초 사립미술관인 토탈미술관이 그 전신으로서, 2005년 모회사 가나아트센터에서 인수하여 조각공원을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이후 가나아트파크는 2006년 미술관(우치다 시게루 설계)과 공연장(반 시게루 설계), 어린이체험관, 가나 제1아틀리에(장 미셸 빌모트 설계)를 개관했다. 2007년 블루(Blue)·레드(Red)·옐로우(Yellow) 스페이스가 신축 및 개관 전을 열었으며, 뒤이어 2008년 가나 제2아틀리에가 열렸다. 2013년 가나아트파크 미술관이 ‘가나어린이미술관’으로, 블루스페이스가 국내 최초 ‘피카소어린이미술관’으로 탈바꿈하면서, 가나아트파크는 어린이를 비롯하여 전 계층을 아우르는 예술복합공간으로 자리매김하였다. 2016년 가나아트파크는 개관 10주년을 맞이하여 예술아카데미 ‘눈코입 미술관’과 ‘호기심 미술관 탐험’을 운영하였으며, 가나아틀리에 입주 작가가 참여한 ‘나도 예술가’ 프로그램이 체험공방에서 진행되었다. 가나아트파크는 신진·중견·원로 작가들에게는 보다 나은 창작 공간과 전시 기회를 부여하고, 대중에게는 미술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 장르를 수용함으로써, ‘인간과 자연 그리고 예술이 공존하는 예술복합공간’을 실현하고자 한다.
경앙사
경기도 안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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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앙사는 오진영 선생의 문인들이 조선 후기 대표적인 성리학자인 노주 오희상을 비롯해 간재 전우, 석농 오진영 선생의 학덕과 절개를 기리기 위해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을 올리는 사당이다. 매년 음력 3월 10일 제사를 지내고 있다. 건물은 총 26㎡(8평)로 겹처마 맞배지붕의 한옥이며, 홍살문, 삼문, 사당 등이 차례로 배치되어 있다. 특히 현판 액자는 석농의 제자인 월헌 이보림 선생이 썼다고 전해지는데 여기서 경앙은 ‘산은 사람을 우러러보고 길은 사람이 많이 다니므로 천하만인에게 존경받는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오희상 선생은 일찍부터 학문에 힘써 성리학의 일가를 이루었고, 정조 24년(1800) 세자익위사 세마가 된 후 여러 차례 벼슬을 하다가 사직하고 광주 징악산에 은거하면서 성리학 연구에 힘썼으며 사망 후엔 헌종 7년(1841)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전우 선생은 경전을 깊이 연구해 당대 최고의 학자라는 평을 들었으며 을사늑약 때 을사오적의 참형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이를 전하지도 못하자, 다음을 기약하며 후진 양성에 힘을 썼다. 의병운동과 3·1 운동 등 항일운동이 거셌던 시기라 이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개의치 않고 계화도에서 수많은 제자를 가르치고 6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오진영 선생은 전우 선생의 제자로 을사늑약에 분개하여 각국의 공관과 정부에 부당함을 알리는 글을 보냈으며, 이수홍과 파리 만국회의에 보낼 공문을 작성하였으나 전달에 실패했다. 1938년 화양동 만동묘 철거를 반대하고 추담별집을 간행, 배포했다. 흰옷과 검은 갓으로 끝까지 항일의 뜻을 굽히지 않았고 학문 연구와 제자 양성에 힘썼다.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 묘
경기도 안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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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남사당 바우덕이 묘는 남사당(男寺黨) 바우덕이(1848~1870)라는 사람이 묻혀 있다. 바우덕이의 본명은 김암덕으로 조선 말기에 서운면 청룡리 불당골에서 염불, 소고춤, 줄타기 등 온갖 기예를 익혀 뛰어난 기량으로 유명하였고, 세상에 나가 놀이판을 벌이니 그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불당골은 조선 초기부터 사당패의 본거지로 유명하였다. 고종 2년(1865) 흥선대원군이 팔도 장정들을 동원하여 경봉궁을 증수할 적에 안성 남사당패가 유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 놀이판을 벌이니 인부들의 위로에 큰 공을 세웠다. 이에 정3품에 해당하는 옥관자를 하사 받으니 그의 영기를 세상에 이르기를 ‘옥관자받은기‘라 하여 우러러봤다. 남사당패는 여섯 마당 풍물놀이, 버나, 살판, 어름(줄타기), 덧뵈기(탈놀음), 덜미(꼭두각시놀음)]의 기예가 뛰어났다. 바우덕이의 개다리패가 유명해지자 안성에는 복만이패, 원윤덕패, 이원보패 등 많은 남사당패가 생기게 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안성은 풍물의 고장이 되었다. 안성 남사당풍물놀이는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출전하여 대통령상을 받았고, 1997년 9월 30일에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었다. 이러한 영광의 근원이 바우덕이에 있는지라 안성 유지(有志)들이 나서서 버려진 바우덕이 묘를 찾아냈고 이를 정화하고 1990년에 묘비를 세웠다. 바우덕이는 이곳에 묻혀 있지만, 그의 공덕은 안성 남사당풍물놀이와 함께 길이 빛나고 있다.
죽주산성
경기도 안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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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죽주산성은 중부지역을 남북으로 통과하는 길과 동서방향으로 서해로 연결되는 길이 서로 만나는 교통과 군사의 요충지를 통제하기 위해 삼국시대에 쌓아서 조선시대까지 사용한 산성이다. 죽주산성은 중성(본성), 외성, 내성으로 구성된 3중성이다. 죽주산성이 가진 군사적 중요성 때문에 여러 시기에 걸쳐 고쳐서 쌓으면서 만들어진 구조이다. 죽주산성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쌓은 중성은 그 높이가 6~10m에 달하며, 성벽 바깥으로 도랑을 파서 방어력을 높였다. 한강유역으로 북진한 신라가 6세기 후반 이후에 죽주산성을 쌓았고, 이후 몇 차례 고쳐 쌓았다. 이와 같이 여러 시기에 걸쳐 다시 쌓은 것은 죽주산성이 품은 시간의 켜를 보여주는 것이다. 외성은 고려 초에 축조되었는데, 신라 산성의 북벽에 새로 성벽을 쌓아 규모를 넓혔다. 고려 고종 23년(1236)에는 죽주방호별감인 송문주(宋文?) 장군이 죽주산성에서 몽고군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이러한 역사적 중요성을 반영하듯이 산성 내에는 송문주 장군의 사당이 설치되어 있다. 임진왜란 기간인 조선 선조 26년(1593)에는 황희 정승의 5대손인 충청병마절도사 황진(?進)이 죽주산성에 주둔한 왜군을 물리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죽주산성의 방어력을 높이고자 중성 내부의 높은 지점에는 내성을 쌓아 최종적으로 3중성이 되었다. 이러한 중복된 산성의 구조뿐만 아니라 성벽을 쌓은 방식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모두 4개의 문이 설치되었고, 남벽의 양 끝에는 각각 1개의 치성이 설치되어 있다. 치성은 돌로 하단부를 60도 정도 경사지게 쌓아 올렸는데,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일본이 한반도 남부지역에 쌓은 왜성의 축조기법을 적용한 결과이다. 또한 중성에는 조선시대 화약무기의 발달에 따른 새로운 군사 시설인 포루가 설치된 것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편 죽산산성 내부의 계곡에는 6기 이상의 신라 집수시설이 배치되어 있음이 발굴조사를 통해서 확인되었다. 산성이 반드시 갖추어야하는 물자원과 관련된 전통 토목기술과 조경의 중요성을 보여주고자, 원형을 참고하여 집수시설의 모습을 복원하였다.
고삼호수
경기도 안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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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에 자리한 고삼호수는 일출 명소로도 알려져 있지만 새벽에 안개 자욱한 모습은 몽환적이고 서정적인 신비감을 느끼게 하는 장소이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의 주 무대인 고삼호수는 푸른 물과 그 위에 떠있는 좌대의 풍경이 인상적이다. 고삼호수는 낚시터로 유명하지만, 영화가 개봉된 후 관광코스로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서울 시내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해 당일코스로 가능하며, 영화에서는 호수 모두를 오픈세트화했기 때문에 원형 그대로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호숫가에 설치된 전망대에서는 이곳 일출을 보기도 좋고 호수와 그 주변의 풍경을 전망하기도 좋다. 호수 중앙에 있는 비석섬이나 팔자섬이 낚시터의 좌대와 조화롭게 펼쳐져 있고 전망대 위에 마련된 의자에서는 휴식을 취하기에도 좋다. 호숫가로는 둘레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산책을 즐기기에도 좋다.
별망성지
경기도 안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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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망성지(別望城址)는 조선 초기 남양만을 거쳐 해안으로 침입하는 왜적을 막기 위하여 바닷가에 있는 두 곳의 얕은 산봉우리를 서로 연결하여 돌로 쌓아 만든 해안산성이다. 이 성은 야산의 능선을 연결하고 남쪽으로 해안에 연접시켜 평지를 감싸 안으며 선박의 출입이 가능하도록 한 해안 평산성(평지와 산을 이어 쌓은 성)이다. 세종대의 기록에 이곳에 수군만호영(종3, 4품의 수군 장수가 담당하던 진)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15세기 이전에 이미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 있던 초지량영(초지량 지역에 있던 수군의 진)은 조선 효종 7년(1656)에 강화도로 옮겨 가면서 폐지되었다. 성의 크기는 둘레 1,040m, 높이 1.2~2.1m라는 옛 기록이 있지만, 6·25전쟁 때 대부분 파괴되었던 것을 1988년 복원하였다. 현재의 성벽은 복원된 것으로 크기는 길이 225m, 높이 1.45m이다. 성벽의 바깥은 돌을 수직에 가깝도록 쌓았고 안쪽은 완만하게 흙을 다져 놓은 상태이다. 성에는 곳곳에 군대가 머물렀던 60㎡ 안팎의 편평한 터가 있는데 그 언저리에는 자기와 기와 조각이 많이 흩어져 있다. 17세기 중엽에 폐기되기까지 약 250년간 서해안의 방어를 위해 사용된 중요한 성이었다. 별망성이란 명칭은 초지량영의 별망군들이 주둔하던 망루가 있었던 데에서 유래한다.
미리내성지
경기도 안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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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에서 북쪽으로 40리쯤 떨어져 은하수라는 뜻의 아름다운 우리말로 불리고 있는 미리내성지는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묘소와 그의 어머니 우르술라, 김 신부에게 사제품을 준 조선 교구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 그리고 김 신부의 시신을 이곳에 안장했던 이민식 빈첸시오의 묘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이 미리내로 불리게 된 것은 천주교 신자들이 신유박해와 기해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숨어 들어와 교우촌을 형성하면서 밤이면 집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달빛 아래 비치는 냇물과 어우러져 마치 은하수처럼 보였다고 하여 붙여졌다. 본래 미리내는 경기도 광주, 시흥, 용인, 양평, 화성, 안성 일대 등 초기 천주교 선교지역을 이루었던 곳의 하나로, 김 신부가 미리내에 묻힌 지 50년 후인 1896년 본당이 설정됐을 때는 이곳에는 1천6백여 명의 신자가 있었다. 26세의 나이에 순교한 김대건 신부는 조정에서 장례마저 치르지 못하게 하여 처형당한 지 40일이 지난 다음에야 이민식 빈체시오가 간신히 시신을 빼내어 남의눈을 피하며 일주일을 등에 지고 이곳 미리내로 옮겨와 안장할 수 있었다. 미리내는 1972년부터 본격적인 성역화 작업이 시작되고 1989년에 103위 성인 기념 대성전이 완성되었다. 성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성지 한가운데 서있는 기념 성당이다. 이 성당은 천주교 103위의 시성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고 기념 성당 뒤쪽으로 난 십자가의 길에는 예수가 로마 병사에게 붙잡혀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받고,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기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는 청동 조각 15점이 서 있다. 김대건 신부의 무덤과 하악골(아래턱뼈)이 모셔져 있는 미리내 성당, 김 신부의 동상, 성모 성당, 게쎄마니 동산(바위를 자연 그대로 이용한 동산) 등을 돌아보는데 2~3시간이 소요된다.
양주향교
경기도 양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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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향교는 조선 태종 원년(1410)에 건립된 후 많은 유학자를 양성 배출하던 지방의 교육기관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전소되었고, 1610년에 재건하였으나 1950년 한국전쟁으로 다시 소실되었다. 전쟁 후 유림들의 뜻을 모아 대성전을 먼저 복원하고, 1984년에 명륜당을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양주향교는 고대 중국오성과 송대 2현을 비롯 신라, 고려, 조선조의 18선현들의 위패를 봉안하고 유덕을 추모하고 있다.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
경기도 화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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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의 3·1운동은 개신교가 한국민족주의 운동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계기가 됐다. 개신교는 3·1운동에서 지도적 역할을 담당했으며, 전국 각지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독립만세시위 중 상당 부분이 개신교신자들에 의해 주도됐다. 그만큼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에 의한 피해도 많았는데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경기도 화성시의 제암리교회이다. 일본 경찰은 1919년 4월 15일 오후 제암리교회에 신자들을 모이게 한 후 문을 폐쇄하고 교회에 불을 지르면서 무차별 총격을 가했으며, 이는 4월 5일에 일어난 만세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제암리교회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이었다. 1905년 8월 제암리 이장이었던 안종후의 주도로 설립된 제암리교회는 동족부락이라는 특성 때문에 유난히 강한 단결력을 지녔는데 3·1 운동 때도 이 같은 성격은 그대로 나타났다. 1959년 4월 사건 현장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로 된 3·1운동 순국기념탑이 세워졌고, 1970년 9월에는 일본의 기독교인과 사회단체들이 속죄의 뜻을 담아 보내온 1천만 엔의 성금으로 새 교회와 유족회관이 건립됐다. 또 1982년 9월 정부에 의해 대대적인 유해 발굴작업이 실시돼 교회 옆에 마련된 묘소에 안장됐으며, 다음해 7월 기념관과 새 기념탑이 세워졌다.
최영장군묘
경기도 고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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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의 명장으로 고려를 지키려다 처형된 최영 장군의 묘이다. 홍건적을 평정하고 수십 차례에 걸친 왜구의 침입을 막아내는 등 흔들리는 고려의 국운을 바로 잡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명나라에서 철령 이북의 영토를 빼앗으려 하자 요동정벌 계획을 세워 압록강까지 진군하였다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1388년 이성계 등의 신진세력에 의해 처형되었다. 묘역은 부인 문화 유 씨(文化柳氏)와의 합장묘로 하나의 봉분으로 조성되었다. 묘제는 원형이 변형되었지만, 석물은 옛 것과 새것이 섞여 있다. 봉분은 고려 말기의 전형적인 직사각 형태이고, 봉분을 보호하기 위하여 아래 부분에 2단으로 둘레석을 조성하였다. 봉분의 정면 왼쪽에는 묘표를 세웠고, 봉분의 정면 오른쪽에는 무민공 충혼비를 세웠다. 봉분 앞에는 혼유석·상석·향로석·문석인 등을 조성하였는데 모두 1970년대에 새롭게 추가한 것이다. 이 묘역은 고려시대의 묘제가 일부 남아있어 학술적 가치가 있다.
용덕사
경기도 용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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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덕사는 경기도 용인시 성륜산 서쪽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용덕사는 ‘용의 덕을 보았다’라는 설화에서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신라 문성왕 시대 염거선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대웅보전과 법당, 범종각, 극락전 등의 전각과 석조여래입상, 삼층석탑 등의 유물이 남아 있다. 또한 용덕사 뒤편에 위치한 용굴은 용이 승천하려 했다는 설화가 전해지며, 많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기 위해 찾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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