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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꼬부랑길 벽화마을
경상남도 창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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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꼬부랑길벽화마을은 2013년 12월 추산동과 성호동 일대 30여 가구를 잇는 골목에 조성됐다. 여행은 벽화마을 안내도가 설치된 성호서10길과 성호서2길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미국 러시모어산의 큰바위얼굴에 조각가 문신과 천상병 시인 등 창원시와 인연이 있는 예술가의 얼굴을 그려 넣은 벽화가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450m 남짓한 골목과 계단에 다양한 그림이 가득하다. 무지개 색깔로 칠한 짧은 돌계단 끝에는 마을 주민이 1910년부터 사용하던 백년우물이 있다. 마산항이 바라보이는 백년우물 옆 물지게 벽화는 가고파 꼬부랑길벽화마을 최고의 포토존이다. 이 외에도 몬드리안의 작품을 연상케 하는 벽화와 등용문을 의미하는 물고기 벽화, 담벼락을 카페 입구처럼 꾸민 벽화 등 좁은 골목 곳곳에 예쁜 그림이 가득해 걷는 내내 마음이 즐겁다. 가고파 꼬부랑길벽화마을을 돌아볼 때는 마을 주민이 생활하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사생활을 침해하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 (출처 : 창원관광)
속초 하도문쌈채 마을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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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속초시 대포동 남단에 위치한 하도문쌈채마을은 1998년 기존 대포·도문·설악이 합쳐져 대포동으로 행정구역상의 명칭이 바뀌게 되었다. 밭농사와 벼농사가 적절하게 어우러진 114 가구, 273명의 주민들로 형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예전에는 농업을 통한 소득이 전부였으나, 현재는 설악산 관광과 동해안 활어 관광이 활기를 띠면서 방문하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농산물 현장판매와 상추, 대추방울토마토, 딸기 등을 재배하고 있다. 특히, 청정 쌈채소류의 재배 및 인근 식당으로 공급하며 농가소득의 향상을 이루고 있다. 2005년 7월부터는 향토식당, 마을 내 펜션 등 숙박시설, 그리고 다양한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마을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 등을 제공함으로써 또 다른 새로운 농가소득을 만들어가고 있다. 도문쌈채마을 입구에는 설악해맞이공원과 설악항이 있어, 사계절 바다여행 및 일출의 장관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싱싱한 활어회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지산서원
경상북도 청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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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군 이서면 신촌리에 위치한 지산서원은 일청재 박호, 모효재 박지현, 경양재 박태고, 죽옹 박중채를 향사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일청재 박호, 모효재 박지현, 경양재 박태고, 죽옹 박중채를 향사하기 위해 1844년(헌종 10)에 창건하였다. 1868년(고종 5)에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당시 사재인 영모재를 매수하여 ‘지산서원’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1964년 상청사를 다시 지었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각지붕이다. 전면의 토석 담장 사이에는 3칸 규모의 산형 대문을 세워 강당으로 출입케 하였으며, 강당의 우측에는 별도의 공간을 마련한 후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인 사당을 세웠다. 강당의 평면은 가운데에 온돌방 2칸을 두고 좌우측에 대청 1칸씩을 연접시켰는데, 좌측 대청의 주위에는 계자각을 세워 누마루를 이루게 하였다.
운계서원(영덕)
경상북도 영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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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계서원은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거무역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이다. 1824년(순조 24) 영해도호부 유림들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조선시대 영해박씨 가문의 박제상, 박세통, 박응천을 제향하고 있다. 운계서원이 처음 건립된 곳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영리의 보곡이었다. 거무역리에서 북쪽으로 2㎞가량 떨어진 보곡에는 박세통, 박홍무, 박감의 묘소가 있다. 이에 1818년(순조 18) 영해박씨 후손들이 선조의 세덕을 기리는 사당을 세웠는데, 이것이 운계서원의 모체가 되었다. 이후 도내 유림들이 발의하여, 1824년 기존의 건물을 주사로 쓰고, 마을의 가옥을 개조해 강당으로 만든 후 박제상, 박세통, 박응천 3인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처음 건립 때는 서원이 아니라 ‘운계정사’라고 불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887년 후손들이 이곳에다 재실인 추원재를 지었다. 1987년 현재 자리에 사당과 봉송정을 갖춘 운계서원을 새로 건립하였다. 철폐되기 전 운계서원은 묘호가 ‘상현사’, 사호는 ‘운계사’인 3칸의 사당을 비롯하여 8칸의 강당, 3칸의 외삼문, 10칸의 주사로 구성되어 있었다. 현재는 사당과 봉송정만 남아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기와집이며, 봉송정은 2칸 규모의 사각 정자이다. 사당 옆에는 ‘삼대시중신도비(三代侍中神道碑)’가 세워져 있다. 매년 음력 10월 7일에 운계서원에서 향사를 지낸다.
연악서원
경상북도 상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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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악서원은 상주시 지천동에 위치한 조선 후기의 서원이다. 박언성, 김언건(1511~1571), 강응철(1562~1635), 김각(1536~1610), 조광벽(1566~1642), 강용량(1608~1676)을 배향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박언성은 12세에 할머니 상을 당하여 3년상을 마쳤고,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하여 벼슬도 사양할 정도로 효자였다. 김언건은 1624년(인조 2) 효행으로 읍민이 정표할 것을 청하여 감찰로 증직 되었다. 강응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상주를 지켰고, 광해군의 폭정에 분개하여 은퇴하고 독서와 저술로 일생을 보냈다. 김각은 김언건의 아들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상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과를 올렸다. 조광벽은 류성룡(1542~1607)의 문인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 하여 공훈을 세웠다. 강용량은 강응철의 아들이다. 병자호란 이후 의리를 지켜 공조참의에 증직 되었다. 연악서원의 사당 창덕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1987년 서원을 복원하며 지은 건물이다. 박언성, 김언건, 강응철, 김각, 조광벽, 강용량의 위패가 있다. 묘우 정면은 현재 경지로 활용되고 있다. 묘정으로 출입하는 삼문은 솟을대문이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가운데 2칸을 어칸으로 하여 우물마루를 시공하였고, 전면에 빗살 사분합문을 두었다. 지천서당의 편액도 함께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연악서원이 훼철되고 복원할 때 재원의 부족으로 강당을 신축하지 못하고 지천서당의 건물을 함께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덕산서원(영주)
경상북도 영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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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서원은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에 있는 서원으로, 최효원과 최장간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했다. 1894년(고종 31)에 금릉과 선산 지역 유림들의 공론으로 최효원(1742∼1795)과 최장간(1763∼1812) 2인을 향사하기 위해 덕산서원을 세우기로 결의하였지만 창건하던 중에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나 이를 피해 현재 위치로 이건 하였다. 1972년 영주와 봉화 유림들의 동의를 얻어 영주시 부석면 상석리에 건립하였고, 1977년에 중건하였다. 매년 음력 3월 15일에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최효원은 숙종 때 가선대부호조참판(嘉善大夫戶曹參判)에, 최장간은 영조 때 가선대부호조참판 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戶曹參判 同知中樞府事)에 추증된 인물이다.
운곡서원(고창)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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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습지 탐방로를 이용하여 방문할 수 있는 운곡서원은 운곡습지 친환경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탐방열차를 탑승하여 종점에서 내리면 된다. 운곡서원은 본래 선산김씨 사우로 중국의 주희와 김제·김주·김숙자·김종직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러다 자영산과 운곡이라는 지명이 주자가 강학하던 곳과 비슷하다 하여 당산에 세운 서원을 자손이 세거 하는 운곡으로 이건 하면서 주자의 위패까지 모시게 되었다.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유림들과 후손들에 의하여 1905년 복설 되었고, 1924년에 복원되었다. 1981년 아산호가 축조되는 바람에 운곡리가 수몰되어 버려 운곡서운은 수몰되지 않고 남았으나 자손들은 떠나고 서원만 남아 있다. 운곡서원에는 주자학을 이어 온 집이라는 의미로 ‘신안구가’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이 편액의 한자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라고 알려져 있다.
도동서원(고창)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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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동서원은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신림면에 위치해 있다. 도동서원은 도동사라고도 불리며, 고창군의 향토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도동서원은 1928년에 지역의 유림들이 나라에 충성을 하고 절의를 도모하고자 방호정사 안쪽에 지은 사당이다. 방호정사는 한말의 수남 고석진(1856~1924)이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다. 도동서원(도동사)에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순절한 의병 대장 면암 최익현(1833~1906)과 수남 고석진(1856~1924), 송천 고예진, 송제 고용진 등이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 이들은 최익현을 따라 항일 의병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1919년에 한국의 독립 청원서를 파리 강화 회의에 보냈으며, 이로 말미암아 일제의 탄압을 받은 분들이다.
계산서원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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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로 김지대(1190~1266)의 충효를 기리기 위해 현재의 경상남도 밀양군 청도면 두곡리에 남계서원을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사당의 명칭을 충효사라 하고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을 담당하다가, 고종 51년(186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위패는 뒷산에 묻고 단을 세워 향사하다가, 1907년에는 후손들이 강당인 쌍수당을 중건하기도 하였다. 그 뒤 전라북도 무장향교 관내 유생들이 발의하여 1982년 현재의 이곳으로 옮겨 복원하고, 명칭을 계산서원이라 하였다. 서원 내에는 사당인 상충사 3칸, 강당인 경의당 4칸, 감모재 5칸, 내삼문, 정문인 쌍수문, 고직사 등이 있다.
봉산서원(대구)
대구광역시 수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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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 11년(1735년)에 후손들이 손린(孫?) 선생의 사당을 지음으로써 시작되어 조선 순조 3년(1803년)에 봉산서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1864년 서원 훼철령으로 서원은 없어지고 1967년에 다시 강당을 지어 경모재(敬慕齋)라고 하였다. 그리고 1996년에 후손들의 노력으로 강당인 지행당(砥行堂), 동재 자리에 사당인 봉암사(鳳岩祠)와 서재인 송독재(誦讀齋)를 세우고 손린 선생을 기리는 유허비도 세웠다. 2009년에는 지행당이 낡아서 크게 수리였으며 건물의 배치와 크기를 보면 지행문이라고 쓴 외삼문인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오른편에 문탄 손선생유허비가 서 있고 맞은편에 강당이 있다. 이 강당에는 봉산서원과 지행당이라는 두 개의 현판이 붙어 있다. (출처 : 행복수성 문화관광)
덕산서원(대구)
대구광역시 수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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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원은 조선조 초기 문신으로 대쪽 같은 절개를 지켰던 남은(南隱) 서섭(徐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첨모재(瞻慕齋)를 1993년 서원으로 복설(復設) 한 것이다. 서섭은 달성서 씨 판서공파 파조(派祖)로 세종 때 대과에 급제한 후 단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인물인데 세조의 왕위 찬탈로 관직을 사직하고 낙향하여 남애(南涯)라는 호를 남은(南隱)으로 고치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은둔하였다. 그리하여 후손들도 그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어 잘 모르다가 80여 년 전 그가 살았던 낡은 집을 헐다가 천장 속에서 발견된 함에서 그의 행장과 유고를 발견하여 그의 충절이 널리 알려졌다. 이에 1926년 후손들이 묘소가 있는 황금동 근처에 첨모재를 세우고 1954년 중수할 때 신도비를 세웠다. 서원의 정당은 4칸으로 강당은 충정당(忠正堂)이다. 동재는 3칸으로 구인재(求仁齋)이고 서재 또한 3칸으로 존성재(存誠齋)이다. 사당은 경의사(景義祠)로 강당의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강당의 서쪽 벽 위에 이수락(李壽洛)의 덕산서원기(德山書院記)가 편액 되어 있고 기둥에는 주련이 걸려 있다. 대문인 외삼문은 숭절문(崇節門)이고 내삼문은 유현문(維賢門)이다. 정당의 동편에 남은 서선생신도비(南隱 徐先生神道碑)와 비각(碑閣)이 있고 강당의 남쪽에 덕산서원 사적비가 있다. (출처 : 행복수성 문화관광)
고산서당
대구광역시 수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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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서당은 처음에 서재(書齋)로 건립되었다가 서원과 서당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이 지역의 대표적인 유학 교육 기관이자 선현을 제향(祭享)하는 공간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 온 곳이다. 건립된 시기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과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 1563~1633)가 이곳에서 강론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50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고산(孤山)’이라는 이름도 퇴계에게 요청하여 받은 것이라고 한다. 이 서당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재건되는 등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강학 공간으로써의 역할을 해오다가 숙종 16년(1690)부터 퇴계와 우복을 배향하는 서원이 되었다. 이후 영조 10년(1734)에는 강당과 동재·서재를 새로 지어 서원으로서의 완전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서원 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훼철되었다가 고종 16년(1879)에 강당만 재건되면서 고산서당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1964년에 강당 건물을 중수하였고, 2020년에는 사당과 삼문, 담장을 세워 옛 서원의 모습을 다시 갖추고, 동고 서사선(東皐 徐思選)을 함께 배향하게 되었으나 2021년 12월 20일에 화재가 일어나 강당이 불에 타고 말았다. 사당 담장 안에 세워져 있는 강학(講學) 유허비(遺墟碑)와 강당 뒤편의 두 그루 정자나무는 이 서당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출처 : 행복수성 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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