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
국내여행지
휴게소
전기충전소
식물도감
맛집
국내맛집
고수의레시피
숙박
축제
여행플래너
최근 검색어
전체삭제
연관 게시글
닫기
Guest
로그인하지 않았습니다
여행지
국내여행지
휴게소
전기충전소
식물도감
맛집
국내맛집
고수의레시피
숙박
축제
여행플래너
전체
강원도
열린 분류
경기도
경상남도
경상북도
광주
대구
대전
부산
서울
울산
인천
전남
전북
제주
충남
충북
시/군 선택
전체
가평군
고양시
과천시
광명시
광주시
구리시
군포시
김포시
남양주시
동두천시
동두천시소요동
부천시
성남시
수원시
시흥시
안산시
안성시
안양시
양주시
양평군
여주시
연천군
오산시
용인시
의왕시
의정부시
이천시
파주시
평택시
포천시
하남시
화성시
검색
전체 468건 / 9 페이지
청원사(안성)
경기도 안성시
0
청원사는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천덕사 중턱에 자리 잡은 사찰이다. 청원사는 산속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어 산새와 풀벌레 소리 이외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이다. 청원사가 산속 깊숙이 자리한 것과 관련된 몇몇 이야기들이 전해오고 있다. 청원사가 자리한 청덕산은 병자호란 때 의병 천여 명이 이곳에 은신하면서 목숨을 구했다고 하여 천덕산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청원사는 산골짜기 언덕 안으로 늘 푸른 안개가 자욱한 것에 유래되었다.
헤이리 예술마을
경기도 파주시
0
헤이리 예술마을은 15만 평 규모로 통일동산 관광특구 내에 위치해 있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을 꿈꾸며 일정한 자격 조건을 갖추고 심사에 통과한 다양한 분야의 창작자와 예술가 300여 명이 공동체 마을을 이루며 거주하고 있다. 헤이리는 문화 예술의 생산, 전시, 판매, 거주가 함께하는 통합적 개념의 특수한 공동체 마을이다. 수많은 갤러리, 박물관, 전시관, 공연장, 소극장, 카페, 레스토랑, 서점, 게스트하우스, 아트숍과 예술인들의 창작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헤이리 모든 건축물의 대부분은 창작과 문화 향유 장소로 일반인들에게 개방되고 있다. 관람객들이 헤이리 마을을 돌아보고 있는 순간에도 헤이리 마을에서는 창작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헤이리 마을에서는 계절에 따라 국내외 유명 문화 예술단체가 참여 또는 초청되는 여러 가지 문화 예술 행사가 열린다.
시화호
경기도 시흥시
0
시화호는 경기도 시흥시, 안산시, 화성시에 만들어진 인공호수이다. 시화호란 명칭은 전체 방조제의 양 끝인 시흥시와 화성시의 앞 글자를 따서 지어진 것이다. 시화호는 한때 수질 오염 때문에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수질의 지속적인 개선 및 관리 체계 마련, 시화호 생태계 복원과 관리를 통한 유역의 자원 이용 극대화 등 시민들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하여 큰고니, 알락꼬리마도요, 꼬마물떼새, 노랑부리저어새, 검은머리물떼새 등 천연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는 새들과 갯벌 생물들이 서식하는 곳이 되었다. 시화호 중간에 설치된 조력발전소는 인구 50만 도시의 가정에 공급할 수 있다.
파주 임진각(평화누리공원)
경기도 파주시
0
임진각은 한국전쟁과 민족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평화관광지이다. 이곳에는 임진강지구 전적비, 미국군 참전비 등 다양한 전적비가 설치되어 있다. 한국전쟁 전 북쪽 신의주까지 운행하던 기차가 전시되어 있다. 임진철교는 두 개의 철교 중 하나가 전쟁 중 파괴되어 교각만 남아 있다. 망배단은 실향민들이 북녘 가족을 향해 절을 올리는 장소이다. 임진각은 이산가족의 아픔이 서린 장소로 알려져 있다. 매년 수백만 명의 내·외국인이 임진각을 방문한다. 이곳은 통일을 염원하는 통일안보관광지로 기능하고 있다. 전시관, 평화누리, 평화 곤돌라, 6·25 전쟁 납북자 기념관 등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임진각 일대는 총 14만 평 규모의 대규모 관광지로 조성되어 있다.
자인사(포천)
경기도 포천시
0
자인사는 김상수(법명 해공)가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에 창건하였다가 1964년 현 위치인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산정리 71번지에 약 5.4m(18척)의 석고 미륵불을 조성하면서 이전한 절이다. 산정 호수 뒷산인 명성산에 자리한 자인사는 명당의 상징이자 궁예와 왕건의 전설이 깃든 잿터 바위를 경내에 두고 있다. 자인사라는 이름은 궁예의 미륵 세계를 상징하는 ‘자’와 영계에서나마 궁예와 왕건의 화해를 기원하는 ‘인’을 합친 것이라고 한다. 승려인 정영도가 1993년 극락보전을, 1998년 미륵 좌불을 조성하여 현재에 이른다. 명성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일주문을 지나면 현대식 건물의 큰 요사채가 보이고, 극락보전 뒤로 책을 펼쳐놓은 것처럼 보이는 책바위가 장관을 이룬다. 전각으로는 약사전, 관음전, 삼성각, 종각 그리고 극락보전이 있다. 입구쪽에는 잿터바위가 놓여있는데 이는 서기 905년 완건이 태봉국 궁예왕의 수하로 있을 때 궁예왕의 명으로 후백제의 금성(나주)를 공격하러 가기 전에 이 바위에서 산제를 지낸 후 현몽을 받아 승전하였다고 전해진다. 후삼국을 통일한 후에도 태조 왕건은 국가의 태평과 백성의 안녕을 기원할 때 이 바위를 찾았으며, 지금도 재를 올린터, 잿터바위라 하여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소원을 이루게 된다고 한다. 또한 경내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맛좋기로 소문나 있다.
고양 서오릉 [유네스코 세계유산]
경기도 고양시
0
서오릉(西五陵)은 ‘서쪽에 있는 5기의 능’이라는 뜻으로 경릉(敬陵), 창릉(昌陵), 익릉(翼陵), 명릉(明陵), 홍릉(弘陵)의 다섯 능을 말한다. 서오릉은 구리 동구릉(東九陵) 다음으로 규모가 큰 조선왕실의 왕릉군이다. 1457년(세조 3) 세조의 첫째 아들 의경세자(추존 덕종)의 의묘(懿墓, 경릉)가 처음 조성되었고 1470년(성종 1) 예종의 창릉(昌陵)이 왕릉으로서 최초로 조성되었다. 이후 순회세자의 순창원(順昌園), 인경왕후의 익릉(翼陵), 숙종의 명릉(明陵), 정성왕후의 홍릉( 弘陵)이 차례로 조성되어 조선시대에는 5기의 능과 1기의 원이 조성되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영빈 이씨의 수경원(綏慶園)과 옥산부대빈 장씨의 대빈묘(大嬪墓)가 옮겨져 지금의 서오릉이 되었다.
팔당호
경기도 광주시
0
팔당호는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과 남종면에 걸쳐져 있는 호수이다. 남한강과 북한강, 경안천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호소로서 1973년 댐의 설치로 형성되었다. 과거에는 물류 교역의 중심지였으며, 수도권 2천7백만 주민에게 물을 공급해 주는 곳으로, 현재는 산과 물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수도권 주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공간으로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출처 : 경기도청)
포천 반월성
경기도 포천시
0
포천시 군내면에 있는 산성이 있는 자리로 길이는 1,080m이다. 산성은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쌓았다고 전해지나, 조사결과 고구려 때 쌓은 성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여러 책에 고성, 산성, 반월산성 등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대동지지를 통하여 광해군 10년(1618)에 고쳐 쌓고, 인조 1년(1623)부터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밖에 ‘연려실기술’, ‘포천군읍지’, ‘견성지’에서도 돌로 쌓았다는 기록과 함께 여러 가지 당시 성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현재 성의 옛 자취를 엿볼 수 있는 시설물로는 남쪽과 북쪽의 문 터, 성벽 바깥쪽에 사각형 모양으로 덧붙여 만든 치성 4개소, 건물터 6곳, 배수시설이었던 수구터, 장수의 지휘대였던 장대터, 적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세웠던 망대터 등이 있다. 반월성이 위치한 청성산은 포천시의 진산으로 옛날부터 신성시되었다. 때문에 이곳에서 많은 제사 및 무속행사가 이루어졌으며 제사 유구로는 지역주민들이 애기당이라 부르는 당집이 있었다. 반월성은 조선 광해군대에 후금을 방어하기 위해 성을 수축하였으나, 이후 성의 기능을 잃고 포천의 치소와 종교적인 공간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경안천 습지생태공원
경기도 광주시
0
봄, 여름, 가을에 신록과 갈대가 어우러지는 경안습지생태공원은 일 년 내내 온갖 철새가 노니는 장소이다. 호숫가 갈대숲 사이로 보이는 몇 그루의 나무들이 운치를 더한다. 이곳은 1973년 팔당댐이 건설되면서 일대 농지와 저지대가 물에 잠긴 이후 자연적으로 습지로 변한 독특한 곳이다. 다양한 수생식물과 갖가지 철새와 텃새가 서식하게 되어 이제 조류관찰과 자연학습의 장으로 거듭났다. 공원을 휘휘 돌아 잘 정돈된 산책로가 조성되어 가족단위로 산책 나온 시민들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기도 한다. 습지는 자연정화기능이 탁월해 수질환경개선에 큰 도움이 되고 있어 점차 그 범위를 확대 조성할 계획에 있으며, 이곳 공원은 습지상태 자연 학습장으로 개인 및 단체 관람객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다. (출처 : 광주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운암뜰 한식거리
경기도 오산시
0
2000년대 신도시 개발로 인해 조성된 운암 단지는 주변에 아파트 주거 단지와 행정타운이 위치해 있다. 인근에 위치한 운암뜰 한식 거리는 오산시의 유일한 먹거리 단지로 해물탕, 갈비, 쌀밥 등 다양한 종류의 향토음식 전문점이 즐비해 있다. 매우 다양한 메뉴를 맛볼 수 있어서 가족끼리 외식을 하거나 단체 모임 또는 회식을 하기에도 적합하다.
회룡사(의정부)
경기도 의정부시
0
사패산 산중에 위치한 회룡사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 태종 이방원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5 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자 경기도 전통사찰 제7호이며, 비구니 절이다. 회룡사는 흔히 도봉산 회룡사로 불리지만 정확히는 도봉산 한쪽 끝 봉우리인 사패산에 위치한 절로 북한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회룡역 1번 출구에서 나와 회룡탐방지원센터를 출발점으로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어느새 당도한다. 회룡사는 681년(통일신라 신문왕1) 의상이 창건하고 법성사(法性寺)라 하였다. 이후 936년(통일신라 경순왕 10) 동진국사가 중창하였고, 1070년(고려 문종 24) 혜거국사가 삼창하였다. 법성사가 회룡사로 불리게 된 것은 무학대사와 태조 이성계의 인연 때문인데, 첫 번째 유래는 1384년(고려 우왕 10)에 무학대사가 절을 중창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성계는 무학과 함께 3년간 창업 성취 기도를 올렸는데 태조는 석굴암에서 무학은 무학굴에서 각각 머물렀다. 그 뒤 이성계가 동북병마사가 되어 요청으로 출정가자, 무학은 홀로 남아 작은 절을 짓고 손수 만든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그의 영달을 축원했다. 그 뒤 왕위에 오른 이성계가 이곳으로 찾아와 회룡사라 했다 한다. 이와 관련해 이성계가 머물렀다는 석굴암은 회룡사의 부속암자로 남아 현재까지 전해지는데, 김구가 상해로 망명하기 전 피신해 은신처로 삼았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김구는 해방 후 석굴암에 들러 친필을 남겼는데 입구에 새겨져 있다. 하지만 무학이 머물렀다는 무학굴은 현재 그 위치를 알 수 없다. 두 번째 설화는 1403년(조선 태종3)에 태조가 함흥차사 끝에 노여움을 풀고 귀경한 뒤, 이 절로 무학을 찾아와 무학이 회란용가(回鸞龍駕)를 기뻐하여 회룡사라 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회룡사 입구 사거리 부근에는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의 상봉지 표지석이 있는데 함흥차사로 꿈쩍도 않던 이성계가 무학대사의 설득으로 한양 환궁길에 오르니 태종이 이곳까지 나와 친히 맞이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래서 이 일대의 마을을 전좌(殿坐) 마을이 되었고, 회룡사의 주소지도 전좌로다.조선의 건국 때부터 조선왕실과 깊은 인연을 이어온 회룡사는 1630년(조선 인조8) 비구니 예순이 중건하였고, 1881년(조선 고종 18)에는 최성이, 1938년 비구니 순악이 중수하는 등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다. 이후 6·25 전쟁 때 불에 타 크게 손실된 절을 1954년 비구니 도준이 중건하고 불사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회룡사오층석탑과 회룡사석조,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의정부회룡사신중도가 있다. 그 중 6·25 전쟁의 피해로 복원된 석탑과 사찰의 큰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석조는 15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오층석탑은 의상의 사리 1과가 봉안되어 있다고 전하나 석탑의 양식으로 보아 신라시대의 작품이라 보기 어렵고 조선시대의 것이다. 또 1887년 상국 신씨가 부모를 위해 발원해 제작된 신중도는 당시 남양주 흥국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대표적인 불화승인 경성당 응석의 작품이다.
용화사(김포)
경기도 김포시
0
김포 용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로, 제방도로를 타고 강화 방면으로 가다가 누산리 평야가 시작되는 지점의 좌측, 운양산에 자리 잡고 있다. 강이 내려다 보이고 그 너머로 일산 신도시 일대가 한눈에 조망되는 아름다운 곳이다. 절의 창건연대는 대략 1405년(태종 5)으로, 뱃사공인 정도명이 조공을 배에 가득 싣고 오다가 간조로 인하여 운양산 앞에 배를 대게 되었는데, 그날 밤 부처가 꿈에 나타나 대어놓은 배 밑쪽에 석불이 있으니 잘 모시라 하여 이를 모시고 자신도 삭발수도하게 되었다는 창건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비교적 높은 석축 위에 동서로 50m, 남북으로 30m에 이르는 대지 위에 용화전이 자리하고 있으며, 용화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의 단층 목조건물로서 팔작지붕으로 된 기와집이다. 5층석탑은 높이 약 5m에 달하며, 회백색 화강암 재질로써 옥개받침은 5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용화전의 상단에 모셔져 있는 석불은 용화사의 창건설화에 나오는 미륵석불로 조선 초기 불상양식을 지니고 있으며, 2004년 8월 김포시 향토유적 제7호로 지정되었다.
검색
이전검색
처음
1
페이지
2
페이지
3
페이지
4
페이지
5
페이지
6
페이지
7
페이지
8
페이지
열린
9
페이지
10
페이지
다음
맨끝
검색
게시물 검색
검색대상
제목
내용
제목+내용
글쓴이
글쓴이(코)
검색어
필수
LOGIN
여행지
맛집
숙박
축제
휴게소
전기차충전소
인기 검색어
#
2
#
로망스
#
구강서원
#
난정리
#
구미
#
서촌
#
오읍
#
용두레
#
통일
요즘 뜨는 글
축제 4월
양평 용문산 산나물축제
관리자 2026-03-31
축제 9월
대전효문화뿌리축제
관리자 2026-03-31
축제 7월
정남진 장흥 물축제
관리자 2026-03-31
축제 10월
수원화성문화제
관리자 2026-03-31
축제 5월
밀양아리랑대축제
관리자 2026-03-31
Guest
로그인
회원가입
여행지
국내여행지
휴게소
전기충전소
식물도감
맛집
국내맛집
고수의레시피
숙박
축제
여행플래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