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원도심 스토리워크

    인천광역시강화군
      강화읍의 숨겨진 역사와 문화를 직접 걸으며 강화의 역사, 산업, 종교를 한눈에 만날 수 있는 강화 스토리워크는 강화 역사만이 아닌 대한민국 근대사와 연결돼 있기에 더욱 의미 있는 곳이다. 강화의 전성기를 느낄 수 있는 심도직물(터), 한옥으로 지어진 가장 오래된 교회인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강화에서 일어난 대규모 만세운동을 기념한 강화 3·1 독립만세 기념비, 한국 천주교의 노동 문제를 적극적으로 개입한 첫 사건을 기념한 노독사목 표지석, 고려시대부터
      • 공유링크 복사
    • 전화번호
    • 강화군 문화관광과 032-930-3125
    • 정기휴일
    • 연중무휴
    • 주차유무
    0
    • 강화_원도심_스토리워크_1_공공1유형.JPG
    • 강화_원도심_스토리워크_2_공공1유형.JPG
    • 강화_원도심_스토리워크_3_공공1유형.jpg
    • 강화_원도심_스토리워크_4_공공1유형.jpg
    • 강화_원도심_스토리워크_5_공공1유형.jpg
    • 강화_원도심_스토리워크_6_공공1유형.jpg
    • 강화_원도심_스토리워크_7_공공1유형.jpg
    • 강화_원도심_스토리워크_8_공공1유형.JPG
    입 장 료:무료
    쉬는날 : 연중무휴
    체험안내 : 스토리워크 투어 코스 (약 2.6㎞ / 여행시간 2시간)

    심도직물 →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 독립만세 기념비 → 노동사목 표지석 → 700년 은행나무 → 담장길 → 조양방직 → 강화중앙교회 → 합일초 → 소창체험관
    이용시간 : [내 맘대로 강화 원도심 도보 여행]

    - 상시 개방

    [해설사와 함께하는 강화 원도심 여행 도보 해설 투어]

    - 10:30

    - 13:30
    주차시설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길27번길 10
    강화읍의 숨겨진 역사와 문화를 직접 걸으며 강화의 역사, 산업, 종교를 한눈에 만날 수 있는 강화 스토리워크는 강화 역사만이 아닌 대한민국 근대사와 연결돼 있기에 더욱 의미 있는 곳이다. 강화의 전성기를 느낄 수 있는 심도직물(터), 한옥으로 지어진 가장 오래된 교회인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강화에서 일어난 대규모 만세운동을 기념한 강화 3·1 독립만세 기념비, 한국 천주교의 노동 문제를 적극적으로 개입한 첫 사건을 기념한 노독사목 표지석, 고려시대부터 강화읍의 한편을 지키고 있는 700년 은행나무, 강화 직물 이야기를 소개한 이화견직 담장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근대식 방직 공장이었던 조양방직, 강화의 독립운동의 현장인 강화중앙교회, 합일초등학교 독립운동길, 강화의 전통이었던 직조산업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소창체험관까지 이어진다. 친환경 전기자전거를 타고 고려궁지 등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는 여행상품도 운영 중이다.

    주변 관광지

    용흥궁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재위 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으로 철종이 왕위에 오르자 강화유수 정기세가 건물을 새로 짓고 용흥궁이라 이름을 붙였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고, 기둥머리에서 보와 도리가 직교하여 직접 결구되는 민도리양식이다. 용흥궁은 창덕궁의 연경당, 낙선재와 같이 살림집의 유형을 따라 지어져 소박하고 순수한 느낌이 든다. 경내에는 철종이 살았던 옛 집임을 표시하는 비석과 비각이 있다. (출처
    약 0.1 km
    김상용순절비
    조선 인조 때 문신인 김상용 선생의 충절을 추모하고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명종 16년에 출생한 김상용 선생은 장렬 김번의 증손이며 척화파 김상헌의 형으로 문과에 급제한 후 우의정을 거쳐 인조 15년에 순국하였다. 김상용 선생의 증손들에 의해 세워진 비석의 내용은 병자호란 때 김상용 선생이 왕실의 종묘와 빈궁·원손을 수행하여 강화로 피난 온 이후 본 강화수비대의 안일한 전투 대응에 대한 지적과 강화성이 청에 의해 함락되고 김상용 선생이 손자와 함께
    약 0.1 km
    김상용 순절비
    약 0.1 km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강화성당은 고요한 (Charies Jone Corfe) 초대주교가 1900년에 축성한 건물로 성베드로와 바우로 성당으로 명명되었다. 당시 건축공사는 궁궐 도편수가 주도하였고 이후 몇 차례 보수가 있었으나 처음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당터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로서의 의미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배의 형상을 따랐다. 성당 건물은 장방형(넓이 4칸, 길이 10칸) 중층구조로 전체적인 건축양식은 한국전통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배치와 내부구조는 서양식
    약 0.1 km
    • 관리자
    • 오래 전
      33
      177,502,328
    • 이전글자운서원2025.12.04
    • 다음글카포레2025.12.04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