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구미시

    보천사(구미)

    보천사는 구미시 매봉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으면서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른다.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로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이름만 전해오다가 불상이 발견되어 1595년 평동 거주 최재기 등 신도들이 보호각을 지어 보호하였다. 이 석불의 발견으로 보천사가 통일신라시대부터 있었던 절임을 알 수 있다.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고려 25대 충렬왕자 왕소군이 병을 얻어 이곳에서 보천이라는 샘물을 먹고 완쾌하였다고 하는 보천샘이 있어 절의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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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정보

    • 전화번호
    • 054-475-3581
    • 정기휴일
    • 연중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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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천사는 구미시 매봉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으면서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른다.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로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이름만 전해오다가 불상이 발견되어 1595년 평동 거주 최재기 등 신도들이 보호각을 지어 보호하였다. 이 석불의 발견으로 보천사가 통일신라시대부터 있었던 절임을 알 수 있다.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고려 25대 충렬왕자 왕소군이 병을 얻어 이곳에서 보천이라는 샘물을 먹고 완쾌하였다고 하는 보천샘이 있어 절의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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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 장 료:무료
    쉬는날 : 연중무휴
    이용시간 : 상시 개방
    주차시설 : 가능
    우편번호 : 39154
    전화번호 : 054-475-3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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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 안내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해평4길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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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천사는 구미시 매봉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으면서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른다.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로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이름만 전해오다가 불상이 발견되어 1595년 평동 거주 최재기 등 신도들이 보호각을 지어 보호하였다. 이 석불의 발견으로 보천사가 통일신라시대부터 있었던 절임을 알 수 있다.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고려 25대 충렬왕자 왕소군이 병을 얻어 이곳에서 보천이라는 샘물을 먹고 완쾌하였다고 하는 보천샘이 있어 절의 이름을 보천사(寶泉寺)라 하였다. 또한 낙동강의 나루를 보천탄, 이 꼴짜기를 보천골이라고 불렀으나 지금은 보천샘이 어디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보천사 대웅전에는 통일 신라 시대의 불상인구미 해평리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불상의 눈,코, 입 일부가 손상되었지만 불상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표현한 광배, 불상, 불상을 받치고 있는 좌대는 거의 안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서 매우 귀중한 사례로 9세기 중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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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4.1 km
    • 관리자
    • 오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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