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구미시

    구미 낙성리 느티나무

    창마라는 마을은 해평현의 병기창이 있던 곳이었으며, 나무 둘레가 5.5m, 수령이 210년 정도 되는 느티나무 고목이 마을 앞을 떡 버티고 있었다. 앞에 있는 당산과 뒤에 있는 주산에 매년 정월 미명에 동제를 행사했는데 제수는 오곡으로 찰밥과 어포류이다. 지금은 나무 아래 쉼터를 조성하여 마을의 일들을 논의하고, 또 마을의 논공행상을 논의하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60~70년대 땔감이 아주 귀하던 시절에 마을 사람이 이 나무에서 말라 떨어진 가지를
    내 여행바구니 →
      • 공유링크 복사

    기본 정보

    • 전화번호
    • 054-880-3597
    • 정기휴일
    • 연중무휴
    0

    한눈에 보기

    창마라는 마을은 해평현의 병기창이 있던 곳이었으며, 나무 둘레가 5.5m, 수령이 210년 정도 되는 느티나무 고목이 마을 앞을 떡 버티고 있었다. 앞에 있는 당산과 뒤에 있는 주산에 매년 정월 미명에 동제를 행사했는데 제수는 오곡으로 찰밥과 어포류이다. 지금은 나무 아래 쉼터를 조성하여 마을의 일들을 논의하고, 또 마을의 논공행상을 논의하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60~70년대 땔감이 아주 귀하던 시절에 마을 사람이 이 나무에서 말라 떨어진 가지를

    내 여행바구니 확인 · 일정 만들기 →
    입 장 료:무료
    쉬는날 : 연중무휴
    이용시간 : 상시 개방
    주차시설 : 불가능
    유모차 대여 여부 : 없음
    관리자 : 경상북도 삼림자원과
    전화번호 : 054-880-3597
    0.0 5점 만점 · 0명 참여

    방문자 별점

    이 장소를 경험하셨다면 별점을 남겨주세요. 첫 평가가 최초 평균별점이 됩니다.

    0.0 5점 만점 · 0명 참여

    별점 비율

    참여자 평가 분포입니다.

    4.5~5.0
    0%
    3.5~4.0
    0%
    2.5~3.0
    0%
    1.5~2.0
    0%
    0.5~1.0
    0%
    위치 안내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성리 230-1
    길찾기
    창마라는 마을은 해평현의 병기창이 있던 곳이었으며, 나무 둘레가 5.5m, 수령이 210년 정도 되는 느티나무 고목이 마을 앞을 떡 버티고 있었다. 앞에 있는 당산과 뒤에 있는 주산에 매년 정월 미명에 동제를 행사했는데 제수는 오곡으로 찰밥과 어포류이다. 지금은 나무 아래 쉼터를 조성하여 마을의 일들을 논의하고, 또 마을의 논공행상을 논의하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60~70년대 땔감이 아주 귀하던 시절에 마을 사람이 이 나무에서 말라 떨어진 가지를 주워 땔감으로 사용하였는데,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부스럼이 났다고 한다. 그 이후로는 떨어진 나뭇가지도 절대로 함부로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하여 오고 있다. 또한 이 동네에 사는 사람이 나무를 베어 사용하려고 톱을 갖다 대는 순간, 밑으로 드리워졌던 가지가 위로 치솟아 오르고 천둥 번개가 쳐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고 하며, 그때 치켜 올라간 가지가 지금까지도 늘어지지 않고 하늘을 향하고 있으며 동네 사람들이 두려워 그 나무에 매년 정월이면 정성스레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주변 관광지

    낙봉서원 여행 추천 - 로드트립
    낙봉서원
    구미시 해평면에 있는 낙봉서원은 1646년(인조 24) 유림의 뜻으로 세워진 조선 시대의 지방 교육기관으로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하였다. 1787년(정조 11)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이후 1931년에 지방 유림의 발의로 복원된 이래 제향을 지내오다가, 1977년 묘우를 다시 세우고 김숙자, 김취성, 박운, 김취문, 고응척의 위패를 봉안하였
    약 0.4 km
    보천사(구미) 여행 추천 - 로드트립
    보천사(구미)
    보천사는 구미시 매봉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으면서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른다.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로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이름만 전해오다가 불상이 발견되어 1595년 평동 거주 최재기 등 신도들이 보호각을 지어 보호하였다. 이 석불의 발견으로 보천사가 통일신라시대부터 있었던 절임을 알 수 있다.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고려 25대 충렬왕자 왕소군이 병을 얻어 이곳에서 보천이라는 샘물을 먹고 완쾌하였다고 하는 보천샘이 있어 절의 이름을
    약 1.1 km
    매학정일원 여행 추천 - 로드트립
    매학정일원
    매학정은 고산 황기로와 그의 사위 옥산 이우가 풍류를 즐기고 학문을 연마하던 곳이다. 고산은 서예가 뛰어나서 초성이라 하였고 옥산 역시 서예의 대가였다. 1533년에 조부의 휴양지에 정자를 지어 매학정이라 하였으며, 후에 옥산이 물려받았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1654년 옥산의 증손 학정 이동명이 중건하고 1675년 그 옆에 귀락당을 지었다. 이 정자는 남향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화강암으로 쌓은 3층의 기단 위에 막
    약 2.0 km
    금오서원 여행 추천 - 로드트립
    금오서원
    고려말 야은 길재(1353~1419의 학문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570년(선조 3) 금오산 밑에 건립한 서원이다. 경내에는 다섯 선현의 위패를 모신 상현묘와 누문인 읍청루, 동재, 서재, 정학당, 내삼문이 있다. 매년 봄·가을 두 차례씩 향사를 지내고 있다. 1575년(선조 8)에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이후 1602년(선조 35) 선산부사 김용(1557∼1620)과 지방 사림들에 의해 지금의 남산 기
    약 5.2 km
    • 관리자
    • 오래 전
      조회수 310
      댓글 0
    • 이전글영천전투메모리얼파크2025.12.04
    • 다음글미수복지구 망배단2025.12.04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