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수열비

    수열비는 수열평 마을에 있으며 조선시대 중기 양사무의 부인 해주 오씨의 절개를 기리는 석비이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장수지방에 침입하였던 왜적들이 집집마다 약탈을 하며 불을 지르고 부녀자들을 겁탈하는 일이 잦았다. 화평 마을에 살고 있는 양사무의 부인 해주오씨는 아침에 들이닥친 왜적들에게 가슴을 잡히는 등 모욕을 당하게 되자, 자기 가슴을 칼로 베어 그들의 얼굴에 뿌리면서 ‘짐승만도 못한 오랑캐들아! 젖이 욕심나거든 이것을 들
    내 여행바구니 →
      • 공유링크 복사

    기본 정보

    • 전화번호
    • 063-350-5561
    • 정기휴일
    • 연중무휴
    0

    한눈에 보기

    수열비는 수열평 마을에 있으며 조선시대 중기 양사무의 부인 해주 오씨의 절개를 기리는 석비이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장수지방에 침입하였던 왜적들이 집집마다 약탈을 하며 불을 지르고 부녀자들을 겁탈하는 일이 잦았다. 화평 마을에 살고 있는 양사무의 부인 해주오씨는 아침에 들이닥친 왜적들에게 가슴을 잡히는 등 모욕을 당하게 되자, 자기 가슴을 칼로 베어 그들의 얼굴에 뿌리면서 ‘짐승만도 못한 오랑캐들아! 젖이 욕심나거든 이것을 들

    내 여행바구니 확인 · 일정 만들기 →
    개장일 : 연중개방
    쉬는날 : 연중무휴
    이용시간 : 상시 개방
    우편번호 : 55623
    전화번호 : 063-350-5561
    0.0 5점 만점 · 0명 참여

    방문자 별점

    이 장소를 경험하셨다면 별점을 남겨주세요. 첫 평가가 최초 평균별점이 됩니다.

    0.0 5점 만점 · 0명 참여

    별점 비율

    참여자 평가 분포입니다.

    4.5~5.0
    0%
    3.5~4.0
    0%
    2.5~3.0
    0%
    1.5~2.0
    0%
    0.5~1.0
    0%
    위치 안내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계남면 화음리935-4
    길찾기
    수열비는 수열평 마을에 있으며 조선시대 중기 양사무의 부인 해주 오씨의 절개를 기리는 석비이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장수지방에 침입하였던 왜적들이 집집마다 약탈을 하며 불을 지르고 부녀자들을 겁탈하는 일이 잦았다. 화평 마을에 살고 있는 양사무의 부인 해주오씨는 아침에 들이닥친 왜적들에게 가슴을 잡히는 등 모욕을 당하게 되자, 자기 가슴을 칼로 베어 그들의 얼굴에 뿌리면서 ‘짐승만도 못한 오랑캐들아! 젖이 욕심나거든 이것을 들고 네 나라로 돌아가라’며 크게 외쳤다. 부인의 위엄에 눌린 왜적들은 곧 달아나고, 피를 많이 흘린 부인은 그 자리에 쓰러져 운명하였다. 훗날 이러한 사연을 나라에 올려 아뢰니, 조정에서는 부인을 위한 비를 세우도록 명하였다. 비각 안에 서 있는 비는 낮은 사각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구조로, 비몸의 윗변이 둥글게 다듬어져 있다. 앞면에는 비의 이름을 길게 새기고, 뒷면에는 ‘수열평 樹烈坪’이라 썼는데, 수열은 부인의 열녀(烈女)의 기상을 심은 것이라는 뜻이다. 이때부터 화평이라는 마을 이름도 수열평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비문은 선조의 손자인 낭선군 우의 글씨이다.

    주변 관광지

    김남택신도비 여행 추천 - 로드트립
    김남택신도비
    신도비란 임금이나 고관의 평생 업적을 기록하여 무덤가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조선 전기의 문신인 김남택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김남택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호는 손재, 성수이며, 본관은 함창이다. 고려말 공민왕 19년(1370) 현 계남면 침령마을에서 태중대부 원비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목은 이색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공부하였으며, 성격이 준엄하여 위언으로 항소하기를 좋아 하였다. 그는 조선조에 들어와 세종 조에 예조판서를 역임하다 만년에는 동
    약 1.1 km
    화산사(장수) 여행 추천 - 로드트립
    화산사(장수)
    약 1.3 km
    자락정 여행 추천 - 로드트립
    자락정
    자락정은 조선시대 사인 김영호, 감사 박수기 등이 처음 지었으나, 1924년에 양쪽 집안의 후손들이 낡은 것을 고쳐 지었다. 자락정은 스스로 즐긴다는 뜻으로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했던 박기수의 심성을 잘 나타낸 말이다. 건물은 앞면 2칸, 옆면 2칸 규모이다. 아름다운 주위 경관, 풍천의 맑은 물과 섬과 같이 치솟은 석벽에 정자가 조화되어 가히 제일경으로 손꼽히고 있다.
    약 2.8 km
    월강서원 여행 추천 - 로드트립
    월강서원
    월강서원은 조선후기 백장 등 4인의 선현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1826년(순조 26)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백장, 송현산, 김남택, 최경회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유림과 후손에 의하여 제단을 마련하고 춘추로 향사를 지내오다가 그 뒤 1948년에 복원하였다. 1974년에는 백여옥, 김남중, 송수산을 추가 배
    약 3.4 km
    • 관리자
    • 오래 전
      조회수 156
      댓글 0
    • 이전글원흥석불입상2025.12.04
    • 다음글백용성조사유허비2025.12.04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