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장흥군

    장흥 방촌리 지석묘군

    지석묘(고인돌)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거석문화의 하나이며 무덤으로 주로 쓰이나 제단이나 기념물적인 의미의 묘표석등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 나라 지석묘는 크게 두가지 형식으로 분류된다. 탁자형의 북방식과 지상에 상석만 있고 묘실은 지하에 두는 남방식이 있다. 지석묘가 전국에서 가장 많이 분포하는 곳이 전남 지방이며 암벽에서 채석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한 것도 있으며 지금까지 2,208개소에 2만기 이상이 알려지고 있다.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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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석묘(고인돌)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거석문화의 하나이며 무덤으로 주로 쓰이나 제단이나 기념물적인 의미의 묘표석등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 나라 지석묘는 크게 두가지 형식으로 분류된다. 탁자형의 북방식과 지상에 상석만 있고 묘실은 지하에 두는 남방식이 있다. 지석묘가 전국에서 가장 많이 분포하는 곳이 전남 지방이며 암벽에서 채석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한 것도 있으며 지금까지 2,208개소에 2만기 이상이 알려지고 있다.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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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방촌리5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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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석묘(고인돌)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거석문화의 하나이며 무덤으로 주로 쓰이나 제단이나 기념물적인 의미의 묘표석등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 나라 지석묘는 크게 두가지 형식으로 분류된다. 탁자형의 북방식과 지상에 상석만 있고 묘실은 지하에 두는 남방식이 있다. 지석묘가 전국에서 가장 많이 분포하는 곳이 전남 지방이며 암벽에서 채석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한 것도 있으며 지금까지 2,208개소에 2만기 이상이 알려지고 있다. 장흥군내의 지석묘도 210여군데 2,250여기가 확인되었는데 이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군집(群集)지역이 방촌리 지석묘군이다. 이 유적은 장흥대덕간 도로에서 관산읍을 지나 남쪽으로 1.5㎞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방촌리 내동 마을 입구로 벅수골이라 부르는 소나무 숲속에 93기의 지석묘가 남북으로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이 곳은 완만한 경사의 낮은 구릉 정상부로 마을 진입로를 만들 때 일부 훼손된 것 같다. 전체적인 수량이 많은데 비해 지석묘의 규모는 큰 편이 아니고 대부분 숲속에 이루어진 관계로 보존이 잘되어 있는 편이다. 이 곳에서 남동쪽으로 1,500m 떨어진 곳에 바다가 있고 북쪽으로 1,000m 떨어진 곳에 고읍천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벅수골」이란 왜적을 막아 주는 곳이란 뜻으로 이 곳이 옛 성터처럼 왜적을 막아 주었다고 한다. 지석묘 주변에서 무늬없는 토기편과 석촉 등이 채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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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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