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장흥군

    장흥 방촌리 석장승

    관산읍에서 방촌으로 넘어드는 국도 23호선 도로변, 좌우측에 화강석으로 된 2기의 석장승이 서 있다. 이중 서쪽에 위치한 장승은 ‘男長?’, ‘벅수’, 명문에 따라 ‘鎭西大將軍’으로 불린다. 이 장승과 마주하는 동쪽의 장승은 ‘미륵석불’, ‘벅수’, ‘돌부처’, ‘女長?’, 등 다양하게 불리나 명문은 없다. 총 크기와 머리크기의 비율을 보면 진서대장군이 1 : 4 미륵석불이 1 : 2이다. 전체 크기에 비해 몸통 둘레가 작고 각 면이 각을 이룬 장방형에
      • 공유링크 복사

    기본 정보

    • 전화번호
    • 061-860-0228
    0

    한눈에 보기

    관산읍에서 방촌으로 넘어드는 국도 23호선 도로변, 좌우측에 화강석으로 된 2기의 석장승이 서 있다. 이중 서쪽에 위치한 장승은 ‘男長?’, ‘벅수’, 명문에 따라 ‘鎭西大將軍’으로 불린다. 이 장승과 마주하는 동쪽의 장승은 ‘미륵석불’, ‘벅수’, ‘돌부처’, ‘女長?’, 등 다양하게 불리나 명문은 없다. 총 크기와 머리크기의 비율을 보면 진서대장군이 1 : 4 미륵석불이 1 : 2이다. 전체 크기에 비해 몸통 둘레가 작고 각 면이 각을 이룬 장방형에

    우편번호 : 59354
    전화번호 : 061-860-0228
    0.0 5점 만점 · 0명 참여

    방문자 별점

    이 장소를 경험하셨다면 별점을 남겨주세요. 첫 평가가 최초 평균별점이 됩니다.

    0.0 5점 만점 · 0명 참여

    별점 비율

    참여자 평가 분포입니다.

    4.5~5.0
    0%
    3.5~4.0
    0%
    2.5~3.0
    0%
    1.5~2.0
    0%
    0.5~1.0
    0%
    위치 안내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 장흥대로 1674
    길찾기
    관산읍에서 방촌으로 넘어드는 국도 23호선 도로변, 좌우측에 화강석으로 된 2기의 석장승이 서 있다. 이중 서쪽에 위치한 장승은 ‘男長?’, ‘벅수’, 명문에 따라 ‘鎭西大將軍’으로 불린다. 이 장승과 마주하는 동쪽의 장승은 ‘미륵석불’, ‘벅수’, ‘돌부처’, ‘女長?’, 등 다양하게 불리나 명문은 없다. 총 크기와 머리크기의 비율을 보면 진서대장군이 1 : 4 미륵석불이 1 : 2이다. 전체 크기에 비해 몸통 둘레가 작고 각 면이 각을 이룬 장방형에 가까운 형태이다. 반면에 전체크기에 비해 둘레가 크고 각 면에 각이 없는 원통형인 미륵석불은 머리에 비해 몸통이 풍만하다. 남?여 장승이 모두 두부(頭部) 외에는 별다른 조식이 없다. 진서대장군은 전체적으로 간략하고 평면적인 조각이다. 얼굴이 있는 위쪽의 폭이 아래보다 조금 넓다. 얼굴에는 왕방울눈이 이중선각(二重線刻)으로 처리되어 있고 주먹코가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양옆 볼까지 찢어진 입을 보면, 입술이 두껍고 입꼬리가 귀밑으로 치켜 올라가 전체적으로 익살스럽게 활짝 웃는 형상이다. 목 밑에서 가슴의 명문 위쪽까지 역삼각형의 수염이 넓게 선각되어 있다. 그 수염 밑에서부터 좌대까지 ‘鎭西大將軍’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한편 미륵석불은 진서대장군에 비해 풍만하면서도 조각이 깊고 무서운 인상을 주고 있다. 얼굴 반을 차지한 부리부리한 왕방울 눈이 툭 튀어나와 있고, 우뚝 솟은 주먹코가 남은 얼굴 반을 차지하고 있다. 두터운 입술을 갖고 있는 입은 직선에 가깝고 짤막하다. 이마에는 반원형으로 나란히 곡선이 선각되어 있다. 방촌리 석장승 건립 당시에는 성문을 수호하는 공공장승의 기능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元宗 6년(1265) 長興府가 懷州牧으로 승격 개칭되고, 회주목의 치소가 있던 방촌을 보강하고자 상령산성(觴岺山城)과 회주고성(懷州古城)을 축성하면서, 성문인 북문동의 동쪽에 미륵으로부터 치소를 지키고자 축성되었던 성으로, 방촌마을 주변에 그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이 회주고성의 서쪽이 약하다하여 읍성의 보허진압(補虛鎭壓) 및 수호를 위해 서문 밖에 이 장승을 세웠다고 전해져 오고 있으나 동쪽에 세워진 것으로 전해오는 미륵석불이 진서대장군과 함께 쌍을 이루고 서있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는 밝혀져 있지 않고, 방촌 석장승은 제작연대와 그 기능, 형태와 명문 등으로 보아 민속신앙과 생활문화사와 관련된 귀중한 학술적 역사적 자료가 되고 있다.

    주변 관광지

    장흥 방촌리 지석묘군 여행 추천 - 로드트립
    장흥 방촌리 지석묘군
    지석묘(고인돌)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거석문화의 하나이며 무덤으로 주로 쓰이나 제단이나 기념물적인 의미의 묘표석등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리 나라 지석묘는 크게 두가지 형식으로 분류된다. 탁자형의 북방식과 지상에 상석만 있고 묘실은 지하에 두는 남방식이 있다. 지석묘가 전국에서 가장 많이 분포하는 곳이 전남 지방이며 암벽에서 채석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한 것도 있으며 지금까지 2,208개소에 2만기 이상이 알려지고 있다. 장
    약 0.3 km
    장흥 오헌고택 여행 추천 - 로드트립
    장흥 오헌고택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에 자리한 조선 후기 가옥으로 2012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중건자인 위계룡의 호를 따서 장흥 오헌고택으로 명명하였다. 이 가옥은 한국농촌의 전형적인 양반집의 구조를 잘 보존하고 있는데 안채, 사랑채, 사당, 곡간채, 행랑채, 헛간채 등 비교적 규모도 큰 편이다. 건물은 남동향을 하고 있고 일직선으로 배치되었다. 여인들의 생활공간인 안채가 깊숙한 곳에 가로로 놓이고,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남자들의 생활공간인 사랑채가 배치되
    약 0.6 km
    존재고택 여행 추천 - 로드트립
    존재고택
    장흥 존재 고택은 장흥 위씨의 종갓집으로 마을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 후기 실학의 선구자인 위백규의 생가이며, 그의 호를 따서 존재 고택이라 불린다. 그는 지방 교육 개선을 통해 향촌 질서유지와 교화뿐만 아니라 관리 선발, 지방 관리의 경제 기능까지 담당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정치 기강의 해이로 인해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제하기 위해 관제 축소, 향촌의 자율적 공평 부세 등 무너져가는 향촌을 살리기 위해 많은 주장을 알렸다. 그의 생가
    약 0.8 km
    장흥 죽헌고택 여행 추천 - 로드트립
    장흥 죽헌고택
    일반적인 옛날주택의 공간구성은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이 다르고 사회적인 지위나 신분의 위치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주택의 배치와 평면구성에 있어서도 대가족제에 따라 규모가 커지고,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려는 의식에 따라 거처하고 활동하는 공간이 따로 구분되었다.이 집은 한국 농촌의 전형적인 양반집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집은 전체적으로 동남향을하여 배치되었고 안채와 사랑채가 있으며 헛간과 곡간체가 있다.여인들이 거처하는 생활공간인 안채는 '一'자형으
    약 0.8 km
    • 관리자
    • 오래 전
      조회수 139
      댓글 0
    • 이전글장흥 어산리 푸조나무2025.12.04
    • 다음글장흥 옥당리 효자송2025.12.04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