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부여군

    부여 송국리 유적

    부여 송국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 유적이다. 하천과 평지에 인접한 낮은 구릉과 대지 위에 100여 기 이상의 집터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집터는 평면 형태에 따라 둥근 것과 긴 네모꼴인 것이 있다. 둥근 집터는 30∼150cm 깊이로 땅을 파서(수혈식주거지) 만들었으며, 한쪽 벽을 얕게 파서 문을 만든 듯하다. 화덕자리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다수의 저장용 구덩이가 발견되었다. 바닥 중앙에 1m 내외의 긴 타원형 구덩이를 파고 그 구덩이 안에 몇 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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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정보

    • 전화번호
    • 부여군 문화재과 041-830-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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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 송국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 유적이다. 하천과 평지에 인접한 낮은 구릉과 대지 위에 100여 기 이상의 집터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집터는 평면 형태에 따라 둥근 것과 긴 네모꼴인 것이 있다. 둥근 집터는 30∼150cm 깊이로 땅을 파서(수혈식주거지) 만들었으며, 한쪽 벽을 얕게 파서 문을 만든 듯하다. 화덕자리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다수의 저장용 구덩이가 발견되었다. 바닥 중앙에 1m 내외의 긴 타원형 구덩이를 파고 그 구덩이 안에 몇 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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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 장 료:무료
    쉬는날 : 연중무휴
    이용시간 : 상시 개방
    우편번호 : 33174
    전화번호 : 부여군 문화재과 041-830-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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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 안내
    충청남도 부여군 초촌면 선사로225번길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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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 송국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 유적이다. 하천과 평지에 인접한 낮은 구릉과 대지 위에 100여 기 이상의 집터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집터는 평면 형태에 따라 둥근 것과 긴 네모꼴인 것이 있다. 둥근 집터는 30∼150cm 깊이로 땅을 파서(수혈식주거지) 만들었으며, 한쪽 벽을 얕게 파서 문을 만든 듯하다. 화덕자리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다수의 저장용 구덩이가 발견되었다. 바닥 중앙에 1m 내외의 긴 타원형 구덩이를 파고 그 구덩이 안에 몇 개의 둥근 구덩이를 만들었다. 네모꼴 집터는 30㎝ 미만으로 땅을 판 반움집이나 지상식에 가까운 것으로 기둥구멍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주춧돌이 있는 발달된 집 형태를 하고 있다. 집터 안에서는 토기와 석기가 많이 출토되었다. 토기는 무문 토기와 붉은 토기(홍도), 검은간토기(흑도)가 나왔다. 무문토기는 납작한 밑, 긴 달걀형의 몸체, 목이 없이 아가리가 밖으로 약간 꺾인 모습을 하여 이전의 무문 토기와 달라 송국리식 토기라 불린다. 돌칼, 돌화살촉, 방추차, 돌도끼를 비롯하여 다양한 석기들도 출토되었다. 그 밖에 많은 양의 불탄 쌀과 벽체에 세웠던 판자가 불탄 채로 나오기도 하였고, 청동도끼 거푸집(동부용범)이 출토되었다. 청동도끼 거푸집은 부채날형 청동도끼의 틀로서 요령지역의 것과 닮은 것이다. 집터 서쪽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무문토기 가마터가 확인되었다. 송국리집터에서 나오는 유물은 출토유물로는 서까래의 흔적을 비롯, 비파형 동검(琵琶形銅劍) ·붉은 간토기 ·민무늬토기 ·돌도끼 ·대팻날 ·끌 ·돌낫 ·돌검 ·숫돌 등 다양하다. 이러한 유물을 토대로 기원전 7∼6세기 전에 농경과 수렵에 기반을 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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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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