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곡사(창원)

    경상남도창원시
      우곡사는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단계리의 전단산 기슭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 범어사의 말사이다. 우곡사(牛谷寺)는 인근의 성주사(聖住寺)·성흥사(聖興寺)와 함께 무염(無染) 스님이 창건한 신라 고찰로 알려져 있지만, 창건 배경에 대해서는 전혀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우곡사가 자리 잡은 전단산이 불교와 관계 깊은 지명이라는 점, 낙동강을 낀 곡창과 왜구를 막아주는 산악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병참기지의 역할을 했으리라는 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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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화번호
    • 055-291-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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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장실:있음
    외국어 안내서비스:불가
    쉬는날 : 연중무휴
    주차시설 : 가능
    유모차 대여 여부 : 불가
    우편번호 : 51137
    전화번호 : 055-291-3100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자여로 459(동읍)
    우곡사는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단계리의 전단산 기슭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 범어사의 말사이다. 우곡사[牛谷寺)] 인근의 성주사[聖住寺]·성흥사[聖興寺]와 함께 무염[無染] 스님이 창건한 신라 고찰로 알려져 있지만, 창건 배경에 대해서는 전혀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우곡사가 자리 잡은 전단산이 불교와 관계 깊은 지명이라는 점, 낙동강을 낀 곡창과 왜구를 막아주는 산악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병참기지의 역할을 했으리라는 점 등으로 창건 배경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우곡사 경내를 들어서는 초입에는 벼락 맞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둘레가 네 아름이나 되고 키가 30m를 넘었다고 전하지만, 지금은 속이 시커멓게 타버린 채 두 길 높이 이상은 자취도 남지 않았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벼락을 맞은 부분은 불에 타서 까맣게 죽고 말았지만 바로 그 옆자리에 새로운 싹을 틔워 줄기를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 팔뚝이나 허벅지만 한 굵기의 이 줄기들은 다시 하늘을 향해 뻗어 오르고 있다. 이 은행나무의 모습은 우곡사와 너무도 닮아 있다. 가람 또한 신라시대에 창건하여 흥망성쇠를 거듭하였지만,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법등을 꾸준히 이으면서 새롭게 발돋음하고 있으니 말이다.

    주변 관광지

    우곡저수지
    우곡저수지는 김해시 진영읍 우동리와 창원시 의창구 동읍 경계에 걸쳐있는 저수지다. 남북으로 긴 형태의 이 저수지는 중앙을 기점으로 서쪽은 창원시 의창구 동읍, 동쪽은 김해시 진영읍 우동리에 속한다. 저수지에 고인 물은 농업용수로 활용되고 있으며, 저수지 주변에 조성된 데크 길과 둑길은 산책길로도 사랑받고 있다. 김해시 진영읍 우동리 쪽의 우곡저수지 둘레에 우동 누리길(800m)이 조성되어 있다. 둑길과 데크 길로 물가를 한 바퀴 산책할 수 있으며 쉬엄쉬
    약 2.1 km
    예강서원
    예강서원은 조선 후기의 부농주택으로 약 700평의 대지에 대문채, 사랑채, 안채, 가묘, 고방채와 기타 3동의 부속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 염수당은 예강서원이라는 편액이 달려있으며 정면 5칸, 측면 1칸에 전후퇴가 있고 우측부터 큰 사랑방, 작은 사랑방, 안마루, 중 문간, 중 사랑방으로 짜여 있다. 전퇴에는 툇마루, 후퇴에는 벽장 등의 수장 공간이 부설되어 있다. 작은 사랑방과 안마루 사이에는 세 짝의 세살문을 달았으며, 안마루 뒷벽은 판벽으로
    약 2.2 km
    창원 진례산성
    김해시 진례면과의 경계를 이루는 비음산 위에 축조된 둘레가 4㎢에 이르는 포곡식 석축산성으로 통일신라시대 때 축성된 것이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진례산성은 김해부 읍치의 서쪽 35리에 있으며 통일신라의 김인광이 진례성제군사였던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 때에 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이 책이 편찬될 무렵에는 이미 폐성이 되어 옛터만 남아 있었다. 진례산성은 통일신라 말의 후삼국 혼란기에 후백제가 경상도 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반
    약 2.3 km
    정병산
    약 2.6 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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