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화번호
- 경주시청 문화유산과 054-779-6110
- 정기휴일
- 연중무휴
- 주차유무
경주 신문왕릉
- 신라 31대 신문왕(재위 681~692)의 무덤이다. 신문왕(681~692년)은 삼국통일의 대업을 이룬 문무왕의 아들로 귀족들의 반란을 진압하고 신라 중대의 전제왕권을 확고히 했다. 또, 국립교육기관인 국학을 설립하고, 지방통치를 위해 9주5소경 제도를 설치하였고, 고구려·백제·말갈인을 포함한 중앙 군사조직인 9서당을 완성하는 등 중앙과 지방의 정치제도를 정비하여 왕권을 강화했다. 당나라를 비롯한 외국과도 빈번히 교류하여 문화의 융성을 도모하는 등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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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장 료:무료
이용가능시설:<주요시설>
왕릉 주변 / 소나무 숲길
<기타 부대 시설>
휴게실
체험가능연령 : 전연령 가능
수용인원 : 제한 없음
이용시간 : 상시 개방
주차시설 : 있음(약 소형 20대)
무료
유모차 대여 여부 : 없음
애완동물 동반 가능 여부 : 없음
우편번호 : 38176
전화번호 : 054-779-6100
이용가능시설:<주요시설>
왕릉 주변 / 소나무 숲길
<기타 부대 시설>
휴게실
체험가능연령 : 전연령 가능
수용인원 : 제한 없음
이용시간 : 상시 개방
주차시설 : 있음(약 소형 20대)
무료
유모차 대여 여부 : 없음
애완동물 동반 가능 여부 : 없음
우편번호 : 38176
전화번호 : 054-779-6100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453-1
신라 31대 신문왕(재위 681~692)의 무덤이다. 신문왕은 문무왕의 아들로 부왕의 뜻을 이어받아 옛 백제와 고구려 백성을 융합하는데 힘썼다. 국립교육기관인 국학을 설립하고, 귀족들의 기반이 되면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지급하였다. 지방을 통치하기 위해 전국을 아홉 개의 주로 나누고 중요한 거점 다섯 곳에 소경을 설치하였다. 신문왕이 죽은 후에는 낭산 동쪽에서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능은 낭산 남쪽 끝자락에 있다. 무덤은 높이 7.6m, 지름 29.3m의 둥글게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이다. 무덤 가장자리의 둘레돌은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5단으로 쌓고, 그 위에 덮개돌을 얹었다. 바깥쪽 사다리꼴 모양의 석재를 받쳐 놓았다. 정남쪽에 배치한 받침석의 윗부분에 ‘문(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곳이 무덤방으로 들어가는 널길 입구라는 것을 표시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