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화번호
- 구리시청 문화예술과 031-550-2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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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갑선생신도비
- 조선 인조 때의 문신인 나만갑((羅萬甲, 1592~1642)의 행적을 기록한 비이다. 본관은 안정(安定)이고 호는 구포(鷗浦)이다. 인목 대비의 서궁 유폐 사건(西宮幽閉事件)이 일어나자 낙향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단신으로 남한산성에 들어갔으며, 관향사(管餉使)가 되어 군량 공급에 큰 공을 세웠다.
신도비는 사각형 받침돌 위에 비신(碑身 ; 글씨를 새기는 부분)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린 방부개석(方趺蓋石) 양식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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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장 료:무료
쉬는날 : 연중무휴
이용시간 : 상시 개방
주차시설 : 불가능
우편번호 : 11905
전화번호 : 구리시청 문화예술과 031-550-2546
쉬는날 : 연중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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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구리시 사노동산163
조선 인조 때의 문신인 나만갑((羅萬甲, 1592~1642)의 행적을 기록한 비이다. 본관은 안정(安定)이고 호는 구포(鷗浦)이다. 인목 대비의 서궁 유폐 사건(西宮幽閉事件)이 일어나자 낙향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단신으로 남한산성에 들어갔으며, 관향사(管餉使)가 되어 군량 공급에 큰 공을 세웠다. 신도비는 사각형 받침돌 위에 비신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린 방부개석(方趺蓋石) 양식을 갖추고 있다. 비문은 김상헌(金尙憲)이 글을 짓고 송준길(宋浚吉)이 글씨를 썼으며 전액은 김수항(金壽恒)이 썼다. 비문에는 가계(家系)와 청년 시절, 관직 생활, 교유 관계, 자손 현황 등을 기록하였다. 1658년(효종 9)에 건립하였다.
(출처 : 국가유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