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사집목판

    경기도가평군
      조선 중기 한문 사대가(漢文四大家)의 한 사람인 월사 이정구(李廷龜, 1564∼1635)의 문집 『월사집(月沙集)』을 간행하기 위해 만든 목판이다. 원집(原集) 799판, 별집(別集) 79판, 연보 61판 총 939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기는 28.0×53.0㎝, 두께 3㎝ 내외이며, 책판의 양 끝에 나무를 끼워 평평하게 하였다. 『월사집』은 최유해(崔有海)에 의하여 1636년 공주에서 처음 간행되었으나 병자호란을 겪으며 소실되었다. 이후 16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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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평군청 문화체육과 031-580-2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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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 장 료:무료
    쉬는날 : 연중무휴
    이용시간 : 상시 개방
    주차시설 : 가능
    우편번호 : 12442
    전화번호 : 가평군청 문화체육과 031-580-2063
    경기도 가평군 상면 태봉리
    조선 중기 한문 사대가(漢文四大家)의 한 사람인 월사 이정구(李廷龜, 1564∼1635)의 문집 『월사집(月沙集)』을 간행하기 위해 만든 목판이다. 원집(原集) 799판, 별집(別集) 79판, 연보 61판 총 939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기는 28.0×53.0㎝, 두께 3㎝ 내외이며, 책판의 양 끝에 나무를 끼워 평평하게 하였다. 『월사집』은 최유해(崔有海)에 의하여 1636년 공주에서 처음 간행되었으나 병자호란을 겪으며 소실되었다. 이후 1688년 이정구의 손자 이익상(李翊相)이 경상감영에서 원집과 부록을 간행하였고, 1720년에는 증손 이희조(李喜朝)가 별집을 간행하였다. 연보 목판은 1930년에 새겨졌다. 월사집 목판은 원래 대구 용연사(龍淵寺)에 보관되었다가, 1928년 충북 옥천군 이원면 이원리로 옮겼고, 다시 1987년 4월 현재의 이곳으로 장판각을 지어왔다. 월사집 목판 자체의 의미와 함께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은 월사의 손자 이은상의 『동리집』, 월사의 6대손 이천보의 『진암집』 도 가평의 장판각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월사집 목판은 국내외에 잘 알려졌으나 『동리집』과 『진암집』은 제대로 알려지거나 평가되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 목판들은 조선시대에 이미 기록으로 남아있었으며 말기까지 그대로 유지된 것이 확인된다. (출처 : 국가유산청)

    주변 관광지

    이정구선생묘 및 삼세신도비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 1564~1635)는 조선 중기 4대 문장가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문인이다. 본관은 연안(延安)이며, 윤근수(尹根壽)의 문인이다. 벼슬은 좌의정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선생의 묘는 부인 안동 권씨(安東權氏)와 합장(合葬)되어 단분(單墳)으로 조성되었으며, 봉분 아래에는 원형의 호석(護石)을 둘렀다. 봉분 앞에는 묘표, 혼유석, 석상, 향로석이 놓여 있으며 좌우로 동자석, 문인석 망주석이 설치되어 있다.
    약 0.1 km
    이천보 고가
    이천보 고가는 조선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천보가 살았던 집으로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정면의 사랑채와 오른쪽의 행랑채이다. 사랑채는 동쪽을 향해 있으며, 경기 지방에서는 흔하지 않은 일자형으로 지어졌다. 왼쪽부터 높게 만든 마루인 누마루, 방, 대청, 방, 부엌 순으로 정면 6칸, 옆면 1칸 반의 규모이다. 특히, 누마루 쪽의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부엌 쪽은 맞배지붕으로 서로 다른데 연이어 두 건물이 있는 경우에 보이는 형식이기도 하다. 대청 위를
    약 1.4 km
    이천보고가
    약 1.4 km
    가평 연하리향나무
    가평군 이천보 고가 내에 위치한 향나무이다. 조선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이천보의 선조가 심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향나무는 사계절 푸른 상록성으로 잎이 침형인 키 큰 교목으로 우리나라 전역에 잘 자랄 수 있다. 정화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예로부터 절간, 묘지 등 신성한 곳에 많이 심겨 왔다.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아 건물 주변의 잔디밭에 심거나 가로수로 심고 있으며, 가지가 곧게 또는 구부러지는 모양새를 하고 있어 정원수나 생울타리로 이
    약 1.4 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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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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