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 수성구

    대구 고모령비

    장년층의 애창곡 가운데 비내리는 고모령은 작곡가 박시춘이 만들고 1946년에 가수 현인이 불러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노래이다. 이 노래의 배경이 된 곳 고모령에 가면 비 내리는 고모령의 노래비가 있으며, 노래비 뒷면에는 노래비를 세운 사연이 적혀있다. 옛날 고모령에는 남편 없이 어린 남매를 키우는 홀어머니가 있었는데 하루는 스님 한 분이 와서 이 집은 전생에 덕을 쌓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가난하다고 하여 어머니와 어린 남매는 덕을 쌓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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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 정보

    • 전화번호
    • 수성구청 문화관광과 053-666-4924
    • 정기휴일
    • 연중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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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년층의 애창곡 가운데 비내리는 고모령은 작곡가 박시춘이 만들고 1946년에 가수 현인이 불러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노래이다. 이 노래의 배경이 된 곳 고모령에 가면 비 내리는 고모령의 노래비가 있으며, 노래비 뒷면에는 노래비를 세운 사연이 적혀있다. 옛날 고모령에는 남편 없이 어린 남매를 키우는 홀어머니가 있었는데 하루는 스님 한 분이 와서 이 집은 전생에 덕을 쌓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가난하다고 하여 어머니와 어린 남매는 덕을 쌓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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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 장 료:무료
    쉬는날 : 연중무휴
    이용시간 : 상시 개방
    주차시설 : 가능
    우편번호 : 42064
    전화번호 : 수성구청 문화관광과 053-666-4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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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 안내
    대구광역시 수성구 팔현길 241 (만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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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년층의 애창곡 가운데 비내리는 고모령은 작곡가 박시춘이 만들고 1946년에 가수 현인이 불러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노래이다. 이 노래의 배경이 된 곳 고모령에 가면 비 내리는 고모령의 노래비가 있으며, 노래비 뒷면에는 노래비를 세운 사연이 적혀있다. 옛날 고모령에는 남편 없이 어린 남매를 키우는 홀어머니가 있었는데 하루는 스님 한 분이 와서 이 집은 전생에 덕을 쌓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가난하다고 하여 어머니와 어린 남매는 덕을 쌓기 위해 흙으로 산을 쌓게 되었는데 현재의 모봉, 형봉, 제봉이라는 세 개의 산봉우리가 되었고 동생과 형이 서로 높이 쌓고자 시샘을 하여 싸우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크게 실망하여 자식들을 잘못 키웠다는 죄스러움으로 집을 나와 버렸다. 집을 나와 하염없이 걷던 길이 지금의 고모령이며 정상에 와서 집을 향해 뒤돌아 봤는데 그 이름이 뒤돌아 볼 고(顧) 어미 모(母)를 합쳐 고모라는 마을 이름도 이곳에서 나왔다. 지금은 경부선 때문에 산은 잘렸고 망우공원에서 파크호텔 팔현부락을 거쳐 고모역으로 이어지는 옛 고갯길이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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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0.3 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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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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